영화가 있으면 부침이 있고, 좌절이 있으면 또 영광이 있는 법이다. 인생은 늘 파란만장하다.
‘69년 롯데의 산증인’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95) 명예회장 역시 이 인생법칙에 예외일 수 없다. 국내 대기업 1세대 경영인으로서 숱한 영광을 맛봤지만, 때론 좌절도 겪었고, 그리곤 영욕을 뒤로한채 쓸쓸히 돌아섰다. 영욕의 크기만 달랐지, 평범한 이들의 인생과 동일한 코스다.
롯데를 키우고 재계 5위로 성장시킨 신 명예회장이 그룹 일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롯데알미늄의 상무이사 임기가 만료되며 한일 롯데 전 계열사 이사직에서 모두 내려오면서 2선으로 물러난 것이다. 직함은 기존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바뀌었다.
그의 퇴장은 산업화와 민주화, 격동기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국내 대기업 1세대의 종언과도 같다. 숱한 재계의 거목(巨木)이 진작 물러났지만, 신 명예회장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 그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69년간 총수를 지켜왔던 신 명예회장의 퇴장은 개인사나 기업사 측면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여러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신 명예회장은 실리를 추구했던 경영자이자, 결단력 있는 경영인이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지향하자(거화취실ㆍ去華就實)”는 좌우명을 늘 잊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 1948년 낯선 일본 땅에서 롯데를 창업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사업 아이템은 껌이었다. 친구가 미군에게 얻어온 추잉껌 맛을 본 신 명예회장은 껌을 통해 ‘코카콜라’와 같은 종합기업을 세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신 명예회장은 시장에 출시된 껌의 가격을 모조리 외울 정도의 꼼꼼함으로 껌사업을 크게 성공시켰다. 이후 초콜릿과 비스킷류도 출시한 롯데는 일본에서 종합식품기업이 됐다.
고국 땅을 밟은 건 1967년이다. “조국에 투자해달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경영을 직접 챙기는 롯데그룹 현해탄 경영의 시작이었고, 이후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하면서 평생의 꿈을 실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 경영권 분쟁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사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의 퇴장은 신동빈 회장 중심의 ‘뉴롯데의 본격화’와 같은 의미다. 누군가 물러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의 퇴진은 국내 기업사에도 다양한 상징을 남겼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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