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잊지 말았어야 했다. ‘신세계’가 대표작이지만 박훈정 감독이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다는 걸. ‘브이아이피’(V.I.P)는 박훈정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과 잔혹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영화에선 쉽게 볼 수 없었던 기획귀순이라는 소재를 ‘브이아이피’는 영리하게 이용한다.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은 속도감이 있고 관계 설정은 촘촘하다. ‘브이아이피’는 5가지 챕터로 나눠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리얼’도 챕터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브이아이피’도 영화 중반까진 굳이 챕터로 나눠야하나 생각이 들지만 마지막을 본다면 감독이 왜 이야기를 챕터로 나눴는지 이해가 된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신세계’를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브이아이피’에 실망할 수도 있다.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에 이종석까지 화려한 캐스팅은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철저하게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건조하게 전개된다. 각자 브이아이피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기 때문에 개연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차라리 이들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고려하면 이해가 빠르다.
네 명의 배우들은 각자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정원 요원 박재혁을 연기한 장동건은 극 전체에서 튀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담당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중반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건 형사 채이도 역의 김명민이다. 집요한 형사의 모습부터 후배 오대환과의 호흡도 훌륭하다. 북한 보안성 공작원 리대범 역의 박희순은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문제의 브이아이피 김광일 역의 이종석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적 모습을 보인다. OCN드라마 ‘보이스’에서 김재욱이 연기한 모태구처럼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기대했다면 이종석이 연기한 김광일은 실망을 안길 것이다. 김광일은 그저 분노만 자아내는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줬다는 것만으론 이종석에겐 성공적이다. 김광일이 웃는 모습은 영화에서 섬뜩하게 다가오는데 이종석은 자신의 소년미 넘치는 마스크를 영리하게 이용한 셈이다. ‘브이아이피’는 즐길 거리가 많은 영화다. 그렇지만 꼭 보라고 추천하긴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남자 영화’라는 느와르이기 때문일까.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김광일의 살인 장면은 여성을 벗겨놓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데 참고 보기 힘들 정도다.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총을 맞는 정도고 잔혹하게 살해된 모습의 묘사는 생략했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이 통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찝찝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리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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