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3년 연속 2%대 저성장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6~2020년 잠재성장률을 2.8~2.9%로 전망한다. 이런 견지에서 최근 미국 스탠포드대 데이빗 브룩먼 교수 등의 공동연구는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경제를 견인하는 기술기업 경영인들의 성향을 분석한 연구인데 자유무역과 개방적 이민정책을 지지하고 불평등 완화를 위한 부자 증세와 전국민 건강보험 같은 진보적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문하는 대목이다. 기술기업 종사자들의 진보적 성향에 비추어볼 때 좀 색다른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불법체류 청소년(드리머)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 폐지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듯이 절반 이상의 미국인은 개방적 이민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민은 미국인의 DNA”라고 주장한 바 있다. 포춘 500대 기업의 40%를 이민자가 창업했다. 1900만명 고용과 4.8조달러 매출을 창출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35%가 이민자다. 구글, 컴케스트, 이베이, 화이저, AT&T가 이민자가 만든 대표적 기업이다. 외국인 비율이 1.7%에 불과한 일본조차 서서히 이민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노인인구 비율이 27%나 되는 초고령국가로 생산인구 감소, 고령화 충격에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우리 경제도 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민을 상수(常數)로 받아들이는 개방형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감히 관행과 제도를 바꾸어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는 노력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규제개혁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업의 눈높이에 맞는 실효성 있는 규제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우리의 규제경쟁력을 작년 105위로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환경, 금융, 안전 등 규제 과다 분야에 대한 탈규제 노력을 강화중이다. 새 정부는 과감한 규제개혁에 바탕을 둔 혁신성장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의 보고로 평가받는 서비스산업의 규제개혁이 시급하다. 원격 진료와 영리 의료법인 허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 가운데 싱가포르, 인도, 태국이 발빠르게 의료산업을 키우고 있다. 드론 산업에 대한 규제 때문에 중국이 세계 시장을 90% 가까이 장악하도록 허용했다. 싱가포르, 마카오의 오락산업이 도시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규제혁파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파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시급하다. 최근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어젠다 2010 개혁’으로 노동시장이 보다 유연해진 것이 독일 경제의 번영을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한국의 높은 청년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은 경직적 노동시장의 산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긱(gig) 이코노미는 계약직, 임시직 같은 비정규적 고용 형태를 뉴노멀로 만들었다. 메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식음료품 종사자의 2/3가 자동화로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민간부문의 노조구성율이 6.4%에 불과하고 노동 유연성이 잘 확보돼 있는 미국조차 보다 신축성 있는 노동시장을 원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성노조에 발목 잡힌 주력 제조업의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하다. ‘제2의 기계시대’ 저자인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무인 매장인 ‘아마존 고’의 출현은 근로자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 경제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노사 패러다임이 출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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