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원 규모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이 일단락 된 지 1년도 안 돼 즉시연금 과소지급 사태가 벌어졌다. 지급 보험금 규모도 1조원을 넘어선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막대하다. 이번에도 보험상품의 약관이 문제가 됐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건이 매년 ‘빵빵’ 터지니 보험사 입장에선 ‘약관 재앙’이라 부를만하다.

즉시연금 과소지급 사태의 개요는 이렇다. 목돈을 한 번에 내고 그 운용 수익을 매달 연금으로 받는 즉시연금 가입자가 막상 연금을 받아보니 보험사가 약속한 연금보다 적게 나왔다. 이에 가입자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보험사가 최저 보증이율만큼은 연금을 줘야 한다며 조정을 신청했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최저 보증이율만큼 연금을 지급하지 못한 것은 이율이 최저 보증이율만큼 떨어진 상황에서 만기시 원금 지급을 위해 일부 금액을 공제했기 때문이다. 보험업의 특성상 보험료가 ‘사업비’ 공제 후 적립되기 때문에 만기에 보험료 원금을 그대로 지급하려면 공제된 사업비 금액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야 한다.

문제는 분조위가 ‘연금 지급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빠진 즉시연금 약관을 문제 삼아 가입자가 요구한 최저 보증이율만큼의 연금 뿐 아니라 사업비에 해당하는 운용 수익까지 연금으로 지급하라고 결정한 점이다. 여기에 분조위에 올라간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을 포함, 전 생보사에 즉시연금 과소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주장처럼 ‘약관’은 보험상품에 대한 보험사와 고객의 ‘약속’이기 때문에 약관 미비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보험사가 지는 것이 맞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도 보험사의 실수에 따른 약관 미비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해당 보험사 모두 보험금을 지급한 바 있다. 하지만 즉시연금 약관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다르다. 해당 보험사인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약관에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라고 명시했는데, 산출방법서에는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공제하는 등의 관련 내용이 모두 나와 있어서다. 물론 금감원의 주장처럼 고객들이 산출방법서를 일일히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약관에 내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험사들이 약관을 단출하게 만든 것도 사실 금감원의 행정지도 탓도 있다. 금감원은 2008년 4월 보험상품 약관이 길고 어려워 소비자 이해도가 떨어진다며 보험사에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저축성보험은 가입 목적이 저축이기 때문에 굳이 약관이 복잡하거나 길거나 어려울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이에 보험사들은 약관을 쉽고 짧게 만들면서 복잡한 내용은 산출방법서와 사업방법서를 참고한다는 식으로 수정한 바 있다.

금감원의 이같은 결정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시대적 조류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금융업권별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소비자 보호만 고려한다면 금감원이 시민단체와 다를 것이 하등 없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는 보험상품약관 등은 모두 금감원이 승인한 것이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금감원이 금융당국으로서 소비자와 금융기관 사이에서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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