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국내 발효유시장 개척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로 여성 일자리 창출 -“과학기술에 미래 달려”…사회공헌에도 큰 관심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1980~1990년대엔 집집마다 ‘야쿠르트’ 담는 천주머니가 걸려있곤 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날 때면 엄마 손 잡은 아이들의 발걸음은 느려졌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건네는 빨대 꽂힌 야쿠르트 한 병에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졌다.
식음료업계 단일 브랜드 사상 최다 판매량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야쿠르트 이야기다. 야쿠르트는 지금도 저당 제품으로, 대용량으로, 얼려먹는 제품 등으로 진화해가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야쿠르트로 국내 유산균 발효유 시장을 연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지난 2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서울 잠원동 본사에 출근해 사옥 구석구석을 살피고 사회공헌활동 등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부지런함이 몸에 밴 생활을 이어오면서도 나서는 것은 싫어해 주변 권유에도 자서전 한 권 남기지 않았다.
▶불신받던 발효유, ‘국민간식’으로=‘건강사회건설(健康社會建設)’. 야쿠르트의 탄생은 1969년 설립된 한국야쿠르트의 창업 이념과 맞닿아있다. 윤 회장은 먹고 살기 팍팍한 국민들이 부담 없는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기능성 음료를 개발하고자 했다. 당시 정부는 적극적인 축산진흥정책을 펼치며 우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생소하다보니 버려지는 양이 많았다. 이에 윤 회장은 남아도는 우유를 발효시킨 후 당을 첨가한 야쿠르트를 떠올렸다. 당시 한국의 기술 만으로 유산균 발효유를 생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일본 야쿠르트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1971년 국내 최초의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야쿠르트 출시 초기엔 ‘균을 어떻게 돈 주고 사먹느냐’, ‘병균을 팔아먹는다’는 등 불신이 컸다. 이후 적극적인 샘플링 마케팅 등으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해가면서 판매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1977년에는 하루 판매량이 100만병을 넘어섰다. 당시 윤 회장에겐 독자 기술력을 키워 유산균을 국산화하는 과제가 남아있었다. 한국야쿠르트는 1976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1981년 자체적으로 야쿠르트 생산에 필요한 종균 배양에 성공했다. 첫 제품 출시 이후 야쿠르트의 누적 판매량은 500억병에 이른다. 발효유 전문기업에서 건강기능식품, 가정간편식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가며 한국야쿠르트는 2009년 식품업계 ‘1조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유통역사 한획=윤 회장은 1971년 야쿠르트를 내놓으면서 ‘부인(婦人) 판매제도’를 도입했다.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의 시초다. 당시 윤 회장은 야쿠르트가 유통 과정에서 쉽게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유통회사에 맡기기보다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47명으로 출발한 야쿠르트 아줌마는 1998년 1만명을 넘어섰다. 윤 회장은 이같은 획기적 방문판매제도로 유통역사에 한 획을 긋는 동시에,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를 도입하면서 여성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쿠르트가 국민간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도 야쿠르트 아줌마 덕이 컸다. 매일 동네 주민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계절과 개인 건강에 맞는 제품을 권하는 전략이 통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야쿠르트 아줌마는 ‘프레시 매니저’로 이름이 바뀌었다. 활동 편의성을 위해 기존 카트도 프레시 매니저가 탑승이 가능한 전동카트로 2014년 교체됐다. 현재 1만1000여명이 소속돼 활약하고 있다.
▶이웃에 관심…‘과학기술’에 통큰 지원=윤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늘 강조했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전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겨 왔다. 그러면서도 사회공헌활동은 최근까지도 본인이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부터 전 임직원이 참여해온 ‘사랑의 손길펴기회(舊 불우이웃돕기위원회)’는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에는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우덕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윤 회장의 과학기술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해왔다. “과학기술에 국가 미래가 달려있다”는 소신으로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1979년부터 후원해왔다. 회사 매출이 급감했던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에도 이 대회 지원은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야쿠르트가 식품업계 최초로 자체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던 것도 과학기술에 대한 윤 회장의 남다른 애정 덕이었다. 이로써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국산화를 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발효유 기술력을 갖추며 오늘날 위상을 다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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