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김여정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차례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평양 남북정상회담, 백두산 등정 등 정상급 남북교류의 중심 인물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으로서 혜성같이 나타난 '로열패밀리'의 대담한 행보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행사 내내 밝은 미소를 보였던 만큼 남측 인사들과의 친교도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3일 밤 청와대를 향해 이른바 '말폭탄'을 쏟아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 제목의 담화에서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 것에 대해 경악을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밤 10시 30분 보도했다.
◆김여정, 도대체 왜?=김여정은 전날 있었던 인민군 전선장거리포병부대의 화력전투훈련을 두고 "우리는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한 것이 아니다"면서 '자위적 차원'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훈련에 "남쪽 청와대에서 '강한 유감'이니, '중단 요구'니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우리로서는 실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김 제1부부장은 남한도 합동군사훈련을 자주 실시하고 첨단전투기를 띄운다고 지적하면서 청와대 반응에 대해 "자기들(남한)은 군사적으로 준비돼야 하고 우리(북한)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소리"로, "이런 비논리적인 주장과 언동은 남측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 경멸만을 더 증폭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김여정은 이어 이달 초 열리려던 한미연합훈련이 연기된 점을 거론하면서 "남조선에 창궐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가 연기시킨 것이지 평화나 화해와 협력에 관심도 없는 청와대 주인들의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김여정은 "강도적이고 억지 부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꼭 미국을 빼닮은 꼴"이라면서 남한이 동족보다 동맹을 더 중히 여긴다며 불만도 표시했다. 김여정은 다만 청와대의 반응이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또 1인칭 화법으로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군사 장비를 사 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 보기 싫은 놀음은 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와 맞서려면 억지를 떠나 좀 더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는 없을까"라고 말했다.
그리고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이라고 물러섰다.
이때의 '누구'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2017년 9월 22일 자신 명의로 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레 짖어대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기들은 군사 준비, 북한은 하지 말라니" 김여정 지적은 '니로남불'? =김여정의 담화문 골자는 '니로남불(니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항의성 메시지로 요약된다. 왜 남측은 군사훈련을 하면서 북측에는 하지 말라느냐는 것이다.
그는 북한 담화문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완곡어법을 곳곳에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우리와 맞서려면 억지를 떠나 좀 더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는 없을까"라며 북한식의 윽박지르는 화법을 피해갔다.
담화 중에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동안 친분을 쌓은 청와대와 내각 주요 인사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지난 2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자 긴급 관계부처 장관 회의를 열고 북한이 발사체 발사 재개와 합동타격훈련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행동을 취한 것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또 회의 참석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의 초대형방사포 시험발사에 대해 우리 정부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준하는 대응을 한 셈이다. 유엔은 북한이 어떤 형태의 탄도미사일도 발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결의안 위반인 셈이다.
그러나 딜레마가 없지는 않다.
세계 각국 정부의 국방부는 자국 안보를 위해 연중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지 않았다면, 3월 초 대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이 실시될 예정이었다. 군사훈련 중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도 할 수 있다. 또한 세계 대부분 나라의 군 조직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자국의 자위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이다. 김여정은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이번에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 '방사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거리 미사일이라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어 훨씬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단거리 미사일인 스커드 미사일에는 핵탄두가 실제로 탑재 가능하다. 그러나 방사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훈련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초대형방사포'는 단거리 미사일과 유사해 특수목적탄을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2018년 남북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결한 '남북군사합의문'에 따라 남북은 육해공에서의 적대적 행위를 일체 중단하기로 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남북군사합의 실행이 멈추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남북이 각각 군사 행동에 몰두해 긴장을 고조시키면 안 된다는 염려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南과 美의 속사정…남은 총선, 미는 대선에 전전긍긍=또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능력이 계속 향상될 경우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는 대상은 남측이다. 아울러 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북한의 도발에 엄중히 항의하지 않을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행보가 중요해 보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국립보건원 백신연구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 미사일 관련 질문을 받고 "단거리 미사일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첫째,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실시하고 있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미국이 굳이 개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둘째,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삼을 사항이 아니라는 태도로 보인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2017년 북한과의 갈등 국면을 안정화시킨 장본인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굳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과의 갈등을 부추길 이유가 없다는 측면도 있다.
결국 청와대도 트럼프식 대응에 힌트를 얻은 듯해 보인다. 청와대는 김여정의 담화에 대해 따로 입장을 내지 않을 계획이다.
청와대 측은 4일 기자들에게 "2일에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와 관련한 정부의 기본 입장을 말씀드린 바 있다"면서 "그 외에 드릴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