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함 악용’ 대부분 정부·공공기관 사칭
민관합동 대응 강화·금융사에 책임 물어
“언젠가 제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발신자가 은성수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방지기술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자신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경험을 말했다. 금융당국 수장도 대상이 될 정도로 보이스피싱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상화된 범죄가 된 것이다.
실제 2007년에는 한 지방법원장이 아들이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고 범인에게 6000만원을 송금한 일이 있었다. 또 몇년전에는 검찰 출입 기자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여러차례 소비자 경보를 발령해 보이스피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2017년 이후 발령된 소비자경보 31건 가운데 12건이 보이스피싱 관련이다. 특히 검찰, 경찰, 금감원 등 정부 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많았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역대 최고치를 찍은 지난해에는 피해건만 7만2000여건이었고, 피해액도 6700억원이 넘었다.
▶어려울 때 더 기승=올해도 코로나19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의 심리를 이용한 정부지원대출을 해주겠다는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렸다. 돈이 절박한 심정에 의심없이 따랐다간 피해를 보기 일쑤다.
가령 피해자에게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보내 피해자가 연락해오면, 코로나 때문에 휴대폰을 통한 비대면 대출을 진행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핸드폰을 원격제어할 수 있는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식의 수법이 있었다. 또 신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며 계좌 이체를 유도해 돈만 챙겨 달아나는 식의 수법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 절차 자체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범죄자들은 날이 갈수록 최첨단 정보통신(IT)기술로 수법을 고도화시켜가고 있는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보이스피싱이 급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민관합동으로…금융회사에 예방·배상책임=정부 역시 관계부처가 힘을 합쳐 보이스피싱을 막는 총력전에 들어갔다. 더이상 경보만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보이스피싱 척결 종합방안’은 공공과 민간 사업자가 인프라를 개선하고 보이스피싱 관련 정보를 공유해 사고를 막는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금융회사에는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를 부여해 ‘이상금융거래 탐지시스템’(FDS)을 고도화하고 보이스피싱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보이스피싱 책임을 소비자 개개인에게 떠맡겨뒀다면 이제는 인프라 사업자가 안전한 금융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발상을 전환한 것이다.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지 못해 발생한 피해의 책임은 금융사가 진다.
통신 측면에서도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부분을 적극 차단해 나갈 방침이다. 가령 사망자나 폐업법인, 외국인 명의 휴대폰은 대포폰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데 주기적으로 확인해 정지시킬 예정이다. 또 비대면 개통이 일반적인 알뜰폰이나 선불폰도 주기적 검사를 통해 명의도용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전화번호를 변조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 금융기관의 모든 보유번호를 위변작 금지 목록에 확대해 사칭을 방지할 방침이며, 해외 발신 인터넷전화를 국내 전화인 것처럼 ‘010’ 등의 번호로 허위 표시하는 것을 적극 단속할 계획이다.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가 발견되면 신속히 이용을 중지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법정형을 강화하고, 관련 방지 의무 위반 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도 추진될 전망이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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