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부하린•레닌을 비롯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역동적•불균등한 발전 양상 때문에 자본과 국가들의 세력 관계는 끊임없이 바뀌고, 이것이 여러 제국 간 경쟁을 끊이지 않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경쟁에서 때로 후발 주자들이 기존 선진국을 제치고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세계 전체에 관철시키고자 했다. 미국과 함께 전승국이었던 소련은 자신이 지배하는 영역에 미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이에 맞섰다. 이후 미•소 양국은 전 세계에서 상대를 억제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경쟁자한테서 자신의 세력권을 지키려 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영사관 폐쇄라는 초유의 조치로 갈등을 키우고 있다. 양국이 40여 년만에 최악의 관계로 치달으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도 선택에 기로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지난 21일 미국의 지적재산권 및 기밀을 훔쳤다는 이유로 미국 텍사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명령했다. 그러자 지난 24일 중국 정부는 보복 차원에서 중국 서남부 청두에 위치한 미 총영사관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1979년 양국 수교 후 영사관 폐쇄 같은 사태가 발생한 건 처음이다. 지난 2년간 미국과 중국은 무역문제를 두고 다투더니, 인권, 첨단기술 탈취, 대만,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대치 전선을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사태 책임론을 두고도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이렇듯 두 강대국의 ‘신냉전’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런 상황은 아시아 각국이 미국과 중국 어느 한편을 지지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속 신냉전은 이념과 시스템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의 특색사회주의 체제에 보기 좋게 밀렸다. 중국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대책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속수무책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미국보다는 낫다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게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이 경제 분야에서 중국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경기 침체의 수렁에 빠졌고, 코로나19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 다시 경제활동을 동결해야 하는 절망적인 사태에 직면했다.

요컨대 미국과 달리 중국은 코로나19를 차단하면서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2% 반등하는 ‘V자’ 회복에 성공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경제를 더욱 큰 위험에 빠뜨리는 걸 원치 않는다. 또 미 주도로 반중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 고립을 추가로 초래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중 신냉전에서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수록 한반도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중국 카드’가 사라진다. 북한은 중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려 들 게 뻔하다.

한국 정부는 최근 대화파로 외교안보팀을 재정비하고 남북관계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려 한다. 이때 중국이 승기를 잡아가는 미•중 신냉전 전개 양상이 한국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중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만큼, 지금은 우리의 균형외교가 더없이 필요한 때이다. 승기를 잡아가는 중국의 손을 놓지 않는 한편, 발악하듯 공격을 퍼부어대는 미국의 등을 쓸어줄 필요도 있다. ‘신냉전’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외교적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글: 이창호(李昌虎)

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겸 헤럴드에듀 논설위원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헤럴드경제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