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출신의 정치가 쑨원[孫文]은 특이하게도 중국과 대만에서 모두 ‘국부(國父)’로 추앙 받는다. 민족, 민주, 민생주의라는 그의 ‘삼민주의’와 신해혁명(1911년)은 한국에서도 역사 시험문제로 자주 등장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요즘 말로 ‘언플(언론플레이)’, 쉽게 말해 자기포장을 잘해서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는 중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와 관련된 책도 무수히 많다. 쑨원뿐이랴, 잘 몰라서 그렇지 의사로 출발해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은 체 게바라, 루쉰, 아옌데 등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진행형으로도 아주 많다. # 만 34세의 젊은 의사 이원철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업가가 되고 싶었지만, 앞서 형이 의대에 진학한 것에 영향을 받아 의대생이 됐다. 착실히 의사의 길을 밟았지만 가슴 깊숙이 ‘사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재활의학과 레지던트를 할 때 파킨슨병, 척수손상 환자들의 저혈압 쇼크를 접하면서 수액 주사(링거)를 맞으면 증상이 완화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때 주사가 아닌 ‘마시는 링거’를 개발하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에 자료조사만 하고 말았다. # 레지던트를 마친 ‘의사’ 이원철은 2016년 2월 특전사 군의관으로 임관했다. 작전수행이나 훈련 때 장병들의 체력소모가 엄청났다. 특히 천리행군 때 탈진자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정맥주사용 수액처치의 한계점을 느꼈다. “수액 1L·주사바늘·고정 도구·드레싱 재료 등 수액 세트 무게가 1.2kg 정도죠. 행군 때 속옷 버리고 칫솔 손잡이까지 잘라내는 마당에 부담스럽죠. 또 200명이 훈련할 때 군의관은 1명이라, 여러 환자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자연히 잊고 있던 ‘마시는 링거’에 대한 열정이 분출했다. # 2016년 10월 본격적으로 ‘마시는 링거’ 연구가 시작됐다. 먼저, 1950년대 이후 관련 논문을 죄다 살폈다. 미군의 이라크전 결과 보고서를 보니 사망자의 90% 이상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일상에서도 출혈 환자들은 적시에 수액을 처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 유럽, 인도, 파키스탄, 일본에서도 관련 연구가 있었다. 다음은 동업자를 모았다. 다른 군의관 3명과 의기투합했다. 이들과 포도당, 전해질, 타우린, 비타민C 등 여러 성분을 넣고 빼가며 연구를 거듭했다. 특전사 장병과 장거리 육상선수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연구자들이 피실험자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원철 대위도 소변통을 늘 들고 다녔다. 15분 간격으로 혈액을 채취하느라 팔과 오금에는 주사자국이 가득했다. 7개월간 200번이 넘는 레시피 수정을 거쳤다. “엄청나게 많이 마셔봤지요. 지금은 맛이 개선돼 매일 즐기지만 사실 초기의 마시는 링거는 대장내시경 하제와 비슷해 마시기 힘들었어요.”
# 심지어 꿈속에서도 ‘마시는 링거’를 연구하기도 한 이원철 대위의 노력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했다. 2017년 10월 내놓은 제품(링티)은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1등으로 육군참모총장상을 받았다. ‘도전! K스타트업’에서는 국방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19년 4월 전역 후 의사가 아닌 사업가의 길을 택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1억 6,000만원을 투자 받았다. 링거워터라는 회사를 세웠고, 국내특허 1건(경구용 균형수액)과 국제특허 1건(PCT)을 출원했다. 2020년 매출이 150억 원에 달한다. 맛과 효과가 탁월했기에 입소문을 타고 많이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 이원철 대표의 링거워터는 지난 7월 ‘배구여제’ 김연경과 전속모델 계약을 체결했다. 또 이어 11월에는 한국체대 스포츠분석센터와 스포츠음료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마시는 링거’를 들고 스포츠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사실 스포츠음료(혹은 이온음료)는 엄밀히 말해 저희 제품의 비교대상이나 경쟁제품이 아닙니다. 사정상 한국에서 음료로 등록한 것이지, 미국FDA에는 의약품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에 마시는 링거 제품이 있고, 이들이 경쟁상대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링티도 체육현장에서 큰 사랑을 받으면서 스포츠음료로 확산되고 있다. 이원철 대표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침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스포츠음료도 없고 하니 향후 스포츠 분야 마케팅에 신경을 쓰겠다. 기회가 닿는 대로 생활체육과 전문체육 등 각종 스포츠이벤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의료 윤리 수업에서 배운 쑨원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 작은 의사는 병을, 됨됨이가 중간인 의사는 사람을, 큰 의사는 나라를 고친다는 뜻입니다. 의사라고 병만 고쳐야 하는 건 아니라 생각했어요. 시스템과 나라를 고친다는 사명이 가슴속 깊이 박혔습니다.” 이원철 대표는 보장된 의사의 길 대신 사업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조금은 거창하게 설명했다. 사실 간단하다. 레지던트들이 숙취해소, 피로회복을 위해 서로 수액주사를 놓아준다는 얘기가 있다. 좋은 것이니 자기들이 하는 것이고, 이원철의 꿈은 이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누리도록 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원래 체육은 의사들이 시작했다. 잘 하면 한국에도 의사 출신의 괜찮은 사업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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