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통령’ ‘특급소방수’ 수식어
편견 깨고 美 첫 재무장관 지명
경제환부 면밀분석·핀셋 처방 무게
재정확대로 ‘바이드노믹스’ 구현
공화당 재정지출 확대 반감은 부담
월스트리트 인플레 우려도 과제로
공자(孔子)는 70세를 ‘종심불유구(從心不踰矩)’라고 했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지만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풍파 다 겪고 살아낸 만큼 삶을 관조하는 여유가 흐를 때다. 도전과 과제, 위기 따위는 일흔 이상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극복하고 나아갈 추동력을 체력으로든, 정신력으로든 충분히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청문회를 거쳐 인준을 받으면 미국의 78대 재무장관직에 오르는 재닛 옐런(74) 지명자는 이런 편견을 깨고 있다. 미 역사상 첫 여성 재무장관이라는 수식어는 이미 ‘클리셰(상투적인 문구)’에 가깝다. 그가 지명된 후 구사하고 있는 언어가 성별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적(適)’ 바이러스와 일전을 세밑 트윗 메시지를 통해 승리로 이끌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전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경제·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건 둘 다 행동을 요구한다”며 “새해를 앞두고 국민들은 내가 인준을 받는다면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매일 일하겠다는 점을 알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황폐해진 구석이 많은 미 경제를 돌보고, 가뜩이나 계층별·인종별 경제 양극화가 심화한 판세를 바꿔보겠다고 벼른 셈이다.
백전노장인 만큼 경제의 환부를 꼼꼼하게 짚었고, 핀셋 처방을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초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팀 인선 발표를 계기로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일하는 가정은 힘든 전투에 직면해 있었다”며 “일자리는 급여 이상의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 자존감과 존경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며 “재무장관으로서 모든 이들을 위해 꿈을 재건하는 데 매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핵심 장관 지명자로서 의례적으로 하는 ‘립 서비스’이거나 ‘의욕 과다’일 것으로 보는 시선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인사들의 평가는 기대 일색이다. 옐런 지명자 스스로 쌓아온 경력과 업적이 신뢰를 갖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존 B.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는 최근 한 매체 기고문에서 “일련의 긴급조치 뒤에 미국이 현재 필요한 건 분명하고 예상 가능한 의사결정”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옐런의 재무장관 지명은 규칙에 기반한 통화정책 옹호자들에겐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예일대 재직 때 옐런 지명자의 논문을 감수한 인연이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식과 경험, 인간 관계의 능숙함 등의 측면에서 현재의 경제적 도전을 다루는 데 더 잘 준비된 인물은 없다”고 옐런 지명자를 치켜세웠다.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바이드노믹스’를 옐런 지명자가 구현하려면 우선 실탄을 많이 풀어야 한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경제 정책 슬로건은 경제 주체들에게 활기를 북돋우기 위한 막대한 재정 투입을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 철학 형성엔 옐런 지명자가 상당 부문 기여했고, 둘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많기 때문에 바이드노믹스의 성패는 곳간 책임자를 맡게 될 옐런 지명자에 실행력이 관건이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탄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여곡절 끝에 의회가 작년 말 통과시킨 9000억달러(약 979조원)의 경기 부양책이 보여준다.
미 언론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이 부양책 덕분에 2분기부턴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업수당, 세입자 임대료 지원 등이 지속적으로 지급돼 가계가 재정위기로 몰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돼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4년간 약 4조달러(약4386조원) 넘는 재정을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건설, 제조업 지원, 친환경 에너지 등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제까지 행정부가 푼 돈은 바이든 당선인의 표현대로 ‘착수금’에 불과한 수준이다.
‘역대급’ 재정지출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보수 공화당 쪽 반대를 넘어서려면 옐런 지명자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긴요하다는 전망이다. 옐런 지명자 스스로 현 기준금리가 사실상 ‘제로(0)’이고, 수년간 이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어 재원조달로 인한 부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야당 설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 일각에서 대두되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옐런 지명자가 신경써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은 연방준비제도가 관리해야 할 이슈이지만, 천문학적 유동성이 공급된 마당에 경제 전반을 통할해야 할 위치에 옐런 지명자가 서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로나19 백신으로 경제가 정상화 궤도에 올랐을 때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핵심은 ‘선(線)’이다. 재정을 무턱대고 풀기보단 흐름을 보면서 속도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준에서 이코노미스트·이사·부의장을 역임하고 의장까지하며 20년 이상 일한 옐런 지명자는 그동안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보단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왔다.
1996년 그가 연준 이사였을 때 ‘테일러 준칙(중앙은행이 금리를 결정할 때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 맞춰 조정하는 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16년 뒤인 2012년 연준 부의장으로서도 ‘테일러 준칙’을 거론,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증가보다 단기 명목금리를 더 인상함으로써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증가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일관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부채 축소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옐런 지명자는 목표가 정해지면 달성하기 위해 원칙에 근거해 나라 살림을 짤 것으로 기대된다.
옐런 지명자는 이미 ‘특급 소방수’ 역할을 무난히 해낸 바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연준의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그가 2014년 연준 수장이 되면서 이론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해 무난하게 종료하고 출구전략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옐런 지명자에겐 조금 더 국제적인 역할을 하라는 주문도 있다. 저소득 국가의 높은 부채 부담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당장엔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걸로 보이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에선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부채 과잉국의 최대 채권국은 중국이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와 옐런 지명자가 중국과 협력을 할지, 대결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면 채무과잉 이슈를 다루는 게 첫번째 시험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내다봤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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