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이제 그래미 시상식도 남의 잔치 같지 않다. BTS가 ‘Dynamite’로 단독 공연을 하는 걸 보니 뿌듯했다.
BTS는 지난 14일 미국 LA 컨벤션센터 등에서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제너럴 필드(4대 본상)가 아닌 장르 필드인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그 상은 ‘레인온미(Rain on me)’를 부른 강력한 경쟁자 ‘레이디 가가-아리아나 그란데’ 듀오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비교적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도 거의 4시간에 걸친 엠넷(M.net) 생중계를 봤는데, 진행자인 배철수·임진모도 이를 ‘국뽕’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계속 시도하고 도전하면 받을 것이라고 했다. BTS가 ‘시상자→합동 공연→단독 공연과 노미네이트’로 단계를 밟았으니, 수상의 해가 머지않았다는 임진모의 긍정적인 코멘트가 듣기 좋았다.
오히려 미국 매체들이 문제 삼았다. 미국의 한 매거진은 “그래미가 BTS를 눈요기(Eye Candy)로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래미 전 편집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이사들이 BTS 관련 기사를 꺼렸고, 뒤로 미루게 했다”고 썼다. 미국인의 시각으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동안 그래미는 다양성과 공정성에서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흑인, 아시안,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화이트 그래미’라는 소리도 듣는다.
2020그래미는 ‘배드가이(bad guy)’를 초대박 히트시킨 미국 Z세대 대표 주자 빌리 아일리시(20)에게 5관왕을 몰아줬다. 초록색 헤어스타일에 큰 옷을 즐겨 입고 몽환적인 발라드를 잘 부르는 빌리는 ‘올해의 레코드상·앨범상·노래상·신인상’까지 본상 4개를 모두 받았고, ‘베스트팝 보컬 앨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상을 몰아주지 않았다. 나눠주기 양상이었다. 본상 4개를 모두 다른 사람에게 줬다.
그런데도 빌리가 올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음으로써, 2년 연속 본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그래미가 유난히 사랑하는 테일러 스위프트(31)는 ‘포크로어(folklore)’로 세 번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그는 코로나19로 집에 틀어박혀 노래만 만들었는지, 지난해 무려 두 개의 정규 앨범(folklore, evermore)을 5개월 간격으로 내놓는 초인적 힘을 발휘했다. 어쩌면 지금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전성기인지도 모르겠다. 기타를 치며 여유롭게 노래하는 그를 보면 완전히 물이 올랐음이 느껴진다. 노래도 내면으로 들어가는 포크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비욘세는 지난해 정규 음반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블랙퍼레이드(black parade)’로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상’ 등을 받아 여성 최다인 총 28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알바니아계 영국인 두아 리파(25)는 ‘베스트 팝 보컬 앨범상’을 받았다.
이제 그래미도 차별할 수 없게 된 힙합 장르는 드레이크, 켄드릭 라마, 에미넘, 카니예 웨스트 등 남성 위주에서 젊은 흑인 여성의 비중이 커졌다. 특히 이번 그래미는 휴스턴에서 올라온 메건 더 스탤리언의 날이었다. 메건은 ‘새비지(Savage)’로 엘턴 존과 켄드릭 라마도 받지 못했던 ‘베스트 뉴아티스트상’을 비롯해 ‘베스트 랩퍼포먼스’ ‘베스트 랩송’ 등 굵직한 상들을 받았다. 비욘세를 보면서 음악의 꿈을 키웠던 그는 이날 비욘세와 나란히 수상 무대에 섰다. 비욘세 역시 한참 후배 메건과 함께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밝혀 “리스펙트”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당당히 밝힌 카디비(28)와 메건 더 스탤리언(26) 등 젊은 흑인 여성의 ‘왑(WAP)’ 무대를 보면 당당해서 놀라고, 선정적이어서 또 한 번 놀란다.
노출 수위가 만만치 않은 그들의 무대를 접한 미국 학부모들이 건전한 방탄소년단의 복고풍 디스코 ‘다이너마이트’를 권유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메건과 카디비는 ‘육체의 긍정성(body positivity)’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당당하다. 메건의 ‘보디(Body)’는 거울을 보고 코로나로 살이 쪄버린 자신의 몸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4대 본상 중 곡의 멜로디와 가사에 중점을 둔 ‘올해의 노래상’을 받은 허(H.E.R.)도 눈에 띄었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 제목을 따온 ‘아이캔트브리스(I Can’t Breathe)’를 통해 인권 존중과 차별 반대의 메시지를 노래했다. 여성 컨트리가수들의 선전 또한 인상적이었다. 앨범 ‘와일드카드(Wildcard)’로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을 받은 미란다 램버트는 ‘와일드카드’의 수록곡 ‘블루버드(Bluebird)’를 불러 전 세계 시청자의 귀를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했다.
팬데믹으로 공연을 하지 못하고 문을 닫아 텅 비어 있는 아폴로시어터, 스테이션인 등 소극장 매니저에게 시상 기회를 주는 걸 보면서 우리도 홍대 앞 소극장 대표나 매니저가 시상에 참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니 로저스 등 지난해 하늘나라로 떠난 뮤지션들을 추모하며, 음악교육 공헌상이 있다는 것도 그래미의 저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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