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기질, 인지능력 무의식의 일부
환경 적응 위한 진화적 선택의 결과
정보 선택, 의미 해석 등 자동적 처리
무의식 영역 접근 불가…통제 어려워
화내고 습관적 행동은 무의식의 '나'
의식적 자기는 자기 이야기 통해 구축
되고 싶은 나, 행동하면 속사람도 변해
김난도 교수는 2020 소비 트렌드로 ‘멀티 페르소나’를 제시한 바 있다. 여러 개의 정체성, 다층적 자아를 수시로 바꿔가면서 생활한다는 것인데, 최근 유행하는 ‘부캐’와도 통하는 말이다.
수시로 가면을 바꿔쓰는 나는 정상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극히 정상이며, 더 정확히는 우리도 우리 자신을 모른다.
프로이트의 위대한 통찰은 처음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들여다본 데 있다. 프로이트는 사람이 본인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를 원초적 충동의 억압에서 찾았다. 무의식적 동기와 감정을 꼭꼭 숨기려는 방어기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무의식 대신 ‘적응 무의식’ ‘비(非)의식’으로 부르는 현대심리학에선 이를 진화의 결과로 본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기질과 특징, 성격 중 많은 것이 적응 무의식의 일부인데, 사람들은 그 부분에 직접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연구에 따르면, 매 순간 우리의 오감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1100만개에 달한다. 이 중 우리가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겨우 40개뿐이다. 나머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처리되는데, 바로 나머지 대부분의 정보를 처리하는 정신이 ‘적응 무의식’이다.
사회학자 티모시 윌슨은 ‘나는 왜 내가 낯설까’(부글북스)에서 적응 무의식을 ‘진화의 결과’로 설명한다. 인류가 환경에 적응, 진화하는 과정에서 비(非)의식적으로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해석, 신속히 비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게 생존에 이롭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적응 무의식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의 정신이 대부분 의식 밖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했고 또 비의식적인 정신 과정이 뇌 구조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정신 과정인 비(非)의식은 어떻게 작동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성격적 특성과 감정을 어떻게 발견해낼 수 있을까?
적응 무의식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암묵적 학습, ‘비의식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규칙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습득한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정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감각에 닿는 정보를 검토하고 그것을 의식 속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비의식적 여과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과기를 통과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목표설정까지 매우 신속하게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적응 무의식은 주변 세계를 정확히 판단하게 된다.
이런 비의식적 활동, 자동항법장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만 능숙하게 수행한다는 데 한계가 있다.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하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다.
저자는 비의식적인 정신 과정과 의식적인 정신 과정의 차이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연구에 따르면, 무의식은 부정적 정보에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주변 환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적인 사건들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맡도록 진화해온 까닭이다. 적응 무의식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집착하고 융통성 없고 유연하지 않을 수 있지만 유형을 탐지하는 일에선 의식적인 정신보다 더 똑똑하다. 환경을 재빨리 둘러보고 거기서 어떤 유형을 탐지하도록 설계된, 보다 일찍 발달하는 체계다.
이에 반해 의식적 자기는 훨씬 더디게 발달하고 비의식적 학습의 속도와 효율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미래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계획을 마련하도록 한다.
저자의 통찰이 두드러진 부분은 적응 무의식과 성격의 관련성 연구다. 저자는 인간의 성격이 두 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적응 무의식, 그리고 자기에 대한 의식적 ‘해석들’이다. 즉 적응 무의식은 사회적 환경을 해석하는 독특한 방식을 갖고 있으며, 이런 자동적 자기의 성향들은 아주 어린 시절에 뿌리를 내리고 부분적으로는 유전적이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비의식적 성향과 동기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적 자기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는 라이프스토리, 자기이론, 자신의 감정과 행동들의 원인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다. 의식적 자기는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구축된다.
인간의 인지 능력과 행동 능력 중 많은 부분은 자동적인 자기에 의존한다. 화를 내고 말다툼을 벌이거나 상황을 습관적으로 해석하는 일 등이다. 문제는 이 자동적인 자기에 대한 의식적인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동적인 자기에 대해 통제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격의 진짜 본질을 알고, 또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려면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말한다.
가령 의식적으로는 다른 집단에 대해 편견이 없는 태도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의식적 행동에 맞춰 비의식적 태도를 바꾸기를 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자신이 인격적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면, 의식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면 속사람도 바뀐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면 조금 더 외향적으로, 슬픔이 느껴질 때는 조금 더 행복한 방향으로, 남들에게 퉁명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는 조금 더 친절하게 행동하도록 노력하면 비의식 차원에서도 따라간다는 것이다.
적응 무의식에 대한 깊고 세심한 탐색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속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나는 왜 내가 낯설까/티모시 윌슨 지음, 정명진 옮김/부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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