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장인’을 다루는 콘텐츠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만화 <미생>은 요즘 같은 출판계 불황기에 무려 1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런 밀리언셀러는 편집자들에게도 기적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 기적이 드라마로도 재현되고 있다. 작품의 성격 상 멜로를 배제해 달라는 윤태호 작가의 요구에 지상파 편성에서 밀려나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미생>. 첫 회 시청률 1.6%에서 시작하더니 단 몇 회만에 4.5%까지 올라갔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 열광적이다. “이건 내 얘기야” 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히 직장인들에게 <미생>은 미처 만화로 접하지 못한 이들까지 공감시키고 있다. 항간에는 왜 여태껏 이 ‘직장’이라는 좋은 소재를 묵혀왔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물론 묵혀왔던 건 아니다. KBS <TV 손자병법> 같은 드라마는 직장생활에서의 처세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고 SBS <샐러리맨 초한지>나 KBS <백맨> 같은 드라마도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직장인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저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단지 직장인이 주인공이었을 뿐이다. 그나마 KBS <직장의 신> 같은 드라마가 비정규직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는 당시 현실에서 불거졌던 갑을 정서가 상당부분 화제의 동인으로 작용한 바 있다.
<미생> 열풍은 이들 드라마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미생>은 단순히 직장인들의 판타지가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건드린다. 사회 초년생 장그래(임시완)가 마주한 현실이란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해보려는 의욕조차 꺾어버리는 세상이다. “열심히 안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었다.”고 말하는 장그래의 독백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우리네 현실의 비참함을 드러낸다. 힘겹게 들어온 회사에서도 그의 ‘스펙 없음’은 꼬리표가 되어 그의 노력조차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힘겨운 건 사회 초년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그래의 팀장인 오과장(이성민)은 회사생활을 바둑에 빗대 이렇게 얘기한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지금껏 막연하게 생각해온 직장인들의 이미지란 참으로 막연하다. 미숙한 사회 초년생들은 늘 선임들에게 깨지고, 선임들은 또 그 위의 선임들에게 깨지고... 출퇴근의 반복,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선술집에서의 소주 한 잔, 한 달의 피곤을 없애주는 월급날 등등. 때로는 가장의 무게로 동정적인 시각을 던지지만 때로는 피곤에 절어 가족에 무심한 그런 사람들. 하지만 <미생>이 그리는 직장인들은 이런 통상적인 월급쟁이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비뚤어진 시스템 속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꿋꿋이 하루를 버텨냄으로써 완생을 꿈꾸는 존재. <미생> 열풍은 그렇게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당신에게 직장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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