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정재철 ‘사랑과 평화’展

대한민국의 바다엔 대한민국의 쓰레기만 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인위의 경계는 자연에겐 의미가 없다. 정재철 블루오션 프로젝트, ‘사랑과 평화’전 전시전경 [헤럴드DB]
대한민국의 바다엔 대한민국의 쓰레기만 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인위의 경계는 자연에겐 의미가 없다. 정재철 블루오션 프로젝트, ‘사랑과 평화’전 전시전경 [헤럴드DB]

푸른 제주의 바다엔 다양한 국적의 ‘해양부유사물’이 있다. 대만 음료 플라스틱병, 호텔용 소형 샴푸병(중국), 중국 일회용 라이터, 일제 엔진오일통 등 주변국의 쓰레기들이 흘러들어온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누지만 자연은 경계가 없다. 정재철(1959~2020)은 제주 해안 곳곳을 다니며 이같은 사물들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자연과 생태계를 읽어낸다. 작가가 직접 그린 대형 지도 ‘제주일화도’ 앞에 서면 자연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을 분절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라는 자성을 하게 된다.

“삶이 예술이고 여행이 미술이었던” 작가 정재철의 개인전 ‘사랑과 평화’가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에서 열린다. 작가의 주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드로잉, 화첩 등 미공개 유작 24점과 작가노트, 아카이브 자료 50여점이 함께 공개된다. 투병생활 중, 방사선 치료를 놓고 ‘생명을 살리는 빛’이라며 작업에 활용하는 등 끝까지 ‘미술’했던 작가의 태도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전시구성은 크게 ‘실크로드 프로젝트’, ‘블루오션 프로젝트’, ‘로컬처럼 살기’, ‘아카이브 섹션’으로 나뉜다.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작가가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유럽을 여행하며 폐현수막으로 제작한 햇볕 가리개와 현지어로 된 안내문 도장, 사진기록, 영상기록 등을 선보인다. 폐현수막은 소비문화의 상징이자 전지구로 퍼져나간 자본주의의 증거기도 하다. 블루오션 프로젝트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해안가를 다니며 수집한 해양 쓰레기를 재구성한 설치작이다.

‘로컬처럼 살기’에서는 고고학적 태도로 재개발 지역에서 가져온 돌, 씨앗, 버려진 식물 등을 수집하고 분류한 작업을 마지막으로 아카이브 섹션에선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작업의 변천과정과 장소특정적 설치, 공공미술 작업 등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와 생전 일면식도 없던 후배 작가와 아키비스트가 참여했다. 아키비스트 이아영은 작가노트 58권 중 선별한 텍스트를 연대순으로 발췌해 예술가로서 존재론적 질문과 미술의 사회적 실천에 대해 고민했던 작가의 생각을 정리했다. 백종관 영상감독은 정재철 작가가 여행하며 촬영한 영상과 사진기록, 작가노트를 자신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고인이 된 작가를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8월 29일까지.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