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리어왕’·정동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다시 무대에
두 배우가 보낸 무대 위에서의 시간을 합치면 도합 117년. 거장 배우들이 나란히 무대로 돌아온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연기해도 배우들의 눈엔 열정과 설렘으로 빛이 난다.
올해로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88)는 ‘리어왕’(31일~11월 21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도전한다. 그는 최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도 연기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이 무대는 필생의 가장 마지막 중요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숭고하고 압도적’이라는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순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절대적 존재에서 한순간에 ‘미치광이 노인’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리어왕 역을 연기한다. 그는 “이 나이쯤 되니 이 역할도 이해할 수 있고, 연령 조건도 맞으니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라고 했다.
작품은 원전 그대로 무대에 옮겼다. 러닝타임은 3시간 20분이나 된다. 이순재는 단독 캐스트로 23회 공연에 모두 출연한다. 매일 여덟 시간씩 연습을 이어가며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순재는 “욕심이 나고 해볼 만한 역할이지만 사실은 만용이라 생각한다”며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구사다. 비유나 문학적 수식이 많아 배우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안 된다.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여야 해서 자기 전에 대사를 한 대목씩 연습해본다”고 말했다.
오만함에 눈이 가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리어의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갈등과 혼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순재는 “작품의 핵심은 절대 권력자가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면서 깨닫게 되는 진리에 있다”며 “(작품은) 백성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군림했던 통치자의 모순을 자탄한다. 리더는 자기 위치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밑에서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가 작품의 마디 마디에 있다”고 말했다. 연극은 셰익스피어 전문가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가 연출을 맡았고, 배우 소유진, 이연희를 비롯해 서울대 극예술 동문을 주축으로 설립된 관악극회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 출신 오정연이 함께 한다.
연기 경력 52년차. 정동환(72)은 4년 만에 다시 한 번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2~31일까지·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로 무대에 선다. 작품의 공연 시간은 관객도 지칠 만큼의 긴 여정이다. 1부 180분, 2부 160분을 더하니 총 340분. 무려 여섯 시간에 달한다. 70대가 돼 다시 한 번 이 작품과 만난 정동환은 이번에도 1인 5역을 맡아 위대한 도전을 이어간다. 연극은 극단 피악의 20주년 기념 작품이기도 하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대표 소설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니콜라이 1세 반란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던 젊은 시절 작가가 감옥에서 만난 한 청년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17년 공연에선 ‘고전의 무대화에 이상적인 표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연출을 맡은 나진환 극단 피악 대표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극단 피악이 레퍼토리 극단으로 거듭나서 자생력을 키워가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자 도전”이라며 “20년 동안 계속 지켜온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이 우리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신념을 무대에서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환이 연기할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로 참여하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작품 해설자 역할도 담당한다.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1막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정동환이 20분을 쉬지 않고 이어가는 대심문관 독백신은 연극계에서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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