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를 하면 10년 늙는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는데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집을 고치면 기분이 좋을 텐데 10년은 더 젊어지지 않을까? 서울에 작은 집을 장만하고 셀프 집수리를 하느라 동분서주 난리를 치고 보름쯤 지나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내 돈 들여 마루 깔고 도배하고 가구를 들여놓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루는 더 밝은색을 깔아야 했고, 무인양품의 캐비닛과 책장은 매장에서 본 것과 색깔과 질감이 달랐다. 다른 가구와 어울리지 않는 수납장에 시선이 갈 때마다 괜한 돈을 썼다는 후회가 든다.

이사하기 전부터 고양시와 서울을 버스로 오가며 원정 집수리를 하느라 몸이 고단했다. 전세나 월세 집을 옮길 때는 거주지만 바뀔 뿐 가구나 살림이 그대로라 크게 바뀔 게 없어서 일이 적었다. 벽지가 더러우면 도배를 하고 수도꼭지가 뻑뻑하면 새로 갈고 이사 뒤 며칠 지나면 정리가 끝나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내 집이기에, 내 생애 마지막 집이 될지도 모르는 집이라는 생각에 돈과 에너지를 들여 꾸미고 싶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바닥에 생긴 작은 스크래치를 보고 심란해 입맛을 잃고 (식탁을 배송하며 내가 아끼는 마루에 전동드릴을 던져 흠집을 낸 리바트 기사에게 저주를!) 천장의 희미한 얼룩도 참지 못해 의자를 놓고 올라가 박박 닦느라 손이 아프다.

커튼을 달고서야 마음이 편해지며 그제야 내 집 같았다. 아침햇살이 눈을 찌를 듯해 온갖 사이트를 염탐해 고르고 골라 이케아 암막 커튼을 달았는데 커튼을 단 뒤부터 흐린 날의 연속, 잠이 더 잘 오는 것 같지도 않지만 우아한 분홍빛이 일렁이는 창가를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 14평 아파트를, 급매로 시세보다 싸게 나온 집을 보자마자 계약한 뒤 고민이 시작되었다. 앉으나 서나 마루 생각. 시중에 파는 타일 중에 마음에 드는 색이 없어 욕실 바닥 수리는 포기. 수리비가 너무 비쌌다. 비싸더라도 내 마음에 들게 고칠까. 인테리어업체에 서너 번 전화를 돌린 뒤 간신히 통화할 수 있었다. 14평이라 말하며 내 간은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작은 집은 (작업) 안 한다, 3000만원 넘는 공사만 견적을 본다는 말을 하더니 전화가 끊겼다. 작아도 편하고 예쁜 집을 꿈꾸던 내 머리에 금이 가고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시 아파트를 팔아 잔금을 치르고 세금과 이사비용을 내고 나면 딱 거기까지. 대출 안 받아도 되는데 인테리어하려고 은행에 돈을 빌려? 싱크대는 포기하고 마루만 교체할까? 서울의 정든 동네에 내 돈으로 집을 샀다는 만족감에 취해 낡고 불편해도 참고 살까? 고민을 거듭하다 바닥 공사와 도배, 욕실의 세면대 유리만 교체했다. 부엌의 가스레인지를 전기로 교체하고 빌트인 세탁기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무언가를 바꿀 때마다 시간을 잡아먹고 (종일 기다려도 오지 않는 기사들 비위 맞추느라 내 입이 부드러워졌다) 일꾼들이 가고 난 뒤 먼지를 닦고 소독하고 청소하느라 병이 날 지경. 나도 모르게 손과 다리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팔꿈치가 저렸다.

집에 미쳐 신간 시집 ‘공항철도’ 홍보도 하지 못하고 파티션과 가벽을 검색하느라 세상만사 나 몰라라 텔레비전 뉴스도 보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좋아하던 가을야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공간에 대한 욕망만큼 강력한 마약은 없는 것 같다.

시인·이미출판 대표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