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하는 국내 원전시장의 현실

KEPIC 인증업체 5년 만 20%↓

현상황 지속땐 기술·인력난 심각

정책에 대한 재고 필요한 시점

탈원전 정책 여파로 원전산업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옛 원전 건설현장. [연합]
탈원전 정책 여파로 원전산업 관련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옛 원전 건설현장. [연합]

“탈(脫)원전 5년 국내 원전 관련 시장이 거의 붕괴됐다. 지금 같은 상황이 5년 더 지속되면 원전 관련 중소기업은 씨가 마를 겁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돼 온 탈원전 정책에 원자력 발전산업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신규 원전공사가 중단되거나 취소되면서 관련 시장 전반이 위축됐다. 글로벌 톱 경쟁력을 보유한 1군 건설사들도 관련 사업 인원과 조직을 축소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원전산업과 관련한 제조, 재료 중소기업들이다. 원전사업에 참여하던 중소기업들 가운데선 당장 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는 곳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원전사업 인증업체 수로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전기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KEPIC(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 인증’은 원전사업 참여가 가능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에 필수적인 원자력 품질보증 자격인증이다.

방사능 유출 등 사고위험 방지를 위한 다중 방호시설 등 완벽한 안전설비가 필수인 원전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선 화력, 수력발전에 비해 한층 강화된 기술인증이 요구된다. 기계, 전기 및 계측제어, 구조물, 공조기기 등 4개 분야로 이뤄진 KEPIC 인증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원전 관련 기술력을 인정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기협회에 따르면 2016년 136개였던 KEPIC 인증 중소기업 수는 올 10월 기준 110곳으로, 20% 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관련 대기업·중견기업 수 역시 74곳에서 61곳으로, 17% 줄었다. 매년 신규인증 업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증포기 업체는 꾸준히 느는 추세.

2016년 22개 업체를 시작으로 2017년 17곳, 2018년 18곳, 2019년 13곳, 지난해 8곳 등이 KEPIC인증 갱신을 포기하며 원전사업을 접었다. 5년간 누적 78곳에 이른다.

원전에 들어가는 공조기기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의 경우 탈원전으로 국내 신규 원전사업이 사실상 중단되며 지난해 KEPIC 인증을 포기했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 해외사업 역시 시장 규모 대비 투자를 감안했을 때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KEPIC를 유지하고 있는 업체 역시 고민이 깊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원전사업을 위해 언제까지 인증을 유지할 지를 고심하고 있는 것.

한 원전부품 중소기업 관계자는 “인증을 유지하려면 내부시스템과 인력에 돈이 들어가는데, 많은 중소기업들이 인증을 반납하려고 한다. 그러자 정부에서도 어쩔 수 없어 인증비용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윤이 나지 않는 사업에 비용을 투입하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원전 중기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며, 국내 원전산업의 미래 역시 암울해지고 있다. 갈수록 국내 산업 기반이 척박해지면서 지금껏 쌓아온 기술력과 우수 인재들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국내를 포기하고 해외로 나갈 수 있을까? 이 역시 어렵다고 업계에선 입을 모은다. 각국 업체들과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요구되는 국내 사업실적을 제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년 넘게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던 미국이 수 년 전 원전을 지으려다 기술인력과 원전 관련 인증 제작사가 부족해 이를 포기했다.

이는 국내 원전산업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라며 “탈원전 정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원전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정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재훈 기자


igiza7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