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사계 담은 6폭 병풍같은 통창
나눔 빛나는 의재미술관, 건축문화대상
ACC·비움박물관 인문학 이야기 가득
대형모자이크 판·거대 강철조각품 장식
31개 폴리아트가 만들어낸 도심갤러리
‘폴리찾기 여행’ MZ세대 챌린지 인기
“네가 필요한 크기 만큼 종이를 잘라라.”
무등산 국립공원은 지금 늦가을 단풍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무등산 자락 의재미술관의 듣는 미술 ‘문향(聞香)’ 부터, 광주광역시 한복판, 기부왕 방탄소년단(BTS)의 제이홉이 ‘착한 아이돌’의 꿈을 키우던 Joy 실용예술학원까지, 광주 예술 여행지는 저마다, 사람 사는 가치, 인간 답게 잘~ 사는 노하우, 인문학을 넉넉하게 품고 있다.
‘비움 박물관’, ‘푸른 길’, 본래 기능을 잃은 건축물의 예술적 재생 ‘폴리(Folly) 아트’, 뷰 맛집 ‘CHANGE’,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포스트 휴먼 앙상블’과 ‘헬로 아시아’ 등도 그렇다.
옛 교도소 터이지만 지금은 ‘광주의 대치동’이라 불리는 동리단길(동명카페거리)의 구수한 커피향도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를 담았다. 세대 화합의 상징 ‘레트로’는 향로봉 자락의 모노레일에도, 충장로 ‘추억의 거리’에도 있다.
▶나눔의 의재미술관= ‘종이 자른 얘기’는 무등산 춘설헌의 주인이자 문인화 대가인 의재 허백련(1891~1977) 선생의 의재미술관에 있다. 이곳에선 오는 28일까지 일정으로 ‘인연의 향기를 듣다’는 부제의 ‘문향’전을 열고 있다. 이웃과 나눈 작품 즉, 무료로 선물한 걸작들을 선사받은 분들로부터 다시 빌려 걸어뒀다.
‘화중유시(畵中有詩)’는 서양화가 최영훈이 1970년, 자기 할아버지 최원순과 가깝게 지낸 의재를 찾아 “첫 개인전을 연다”고 신고하러 왔을 때의 일화를 담고 있다. 종이를 잘라오라 하니, 영훈은 책상 위에 두고 늘 새기려는 생각에 60X20㎝ 정도로 잘라다 대령했는데,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 형상만 그리지 말고 시 쓰듯 여운을 두라’는 일필휘지를 받았다. 훗날 ‘종이를 아주 크게 잘라드릴 걸 후회된다’고 농반진반했다.
소록도의 오스트리아 두 천사 이전에 나환자를 돕던 최흥종의 회갑때 장수하길 바라며 선물한 구여도(九如圖), 자기 작품을 표구해주던 완벽당 주인의 딸 결혼식때 그려준 부부화합 기러기 그림 등 숱한 ‘인연’이 함께 걸려있다.
미술관의 통창은 무등산의 사계를 담은 6폭 병풍 같다. 때마침 불타는 단풍이 드리워져 있는데, 문외한도 붓을 들고, 시를 읊조릴 듯 하다. 치장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의재미술관은 2001년 인천공항청사를 2위로 밀어내고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레트로와 K팝=무등산에도, 도심에도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복고풍 놀거리가 있다. 향로봉 자락 지산유원지에는 산중 모노레일, 팔각정, 회전목마가 추억을 자극한다.
동구 문화전당로 전일빌딩245-민주의 종각 사이엔 ‘추억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오징어게임’의 녹색트레이닝복을 입은 도우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남녀노소 모두가 즐긴다. 포니승용차 앞에 주산부기학원, 모나미문구사, 핑퐁탁구장, 까치만화방, 동명이발소, 현대예식장이 40년전 모습으로 서 있다. 서석국민학교 교실안에선 저마다 추억을 되새기듯 칠판에 무언가 열심히들 적고 ‘456’ 등번호의 오징어츄리닝 총각이 ‘담탱이 쌤’ 처럼 서서 지켜본다. 달고나 대형 조형물이 대미를 장식한다. 요즘 어디든 기승전-오징어다.
여기서 400여m만 가면 유노윤호, 제이홉 등이 청소년시절 연습하던 조이실용음악학원이 있다.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와 전일빌딩245를 중심으로, 남쪽에 K팝스타의 거리·아시아음식문화지구·뷰티-쇼핑거리, 북쪽에 대인예술시장·예술의거리·비움박물관이 있고, 북동에 동명카페거리, 남동에 남광주시장, 서쪽엔 한복의 거리가 포진한 가운데, 도심 곳곳에 폴리아트가 있다.
▶거대 미술관이 된 광주 도심=광주영상복합문화관 꼭대기의 뷰 폴리 ‘CHANGE’는 예술 옥상이다. 대형 모자이크 판을 돌려 내 맘에 드는 색감을 고르고 옆 친구가 고른 색감과 조화를 도모한다. 판 돌린 사람이 작품 임자다. 도보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을 올려다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가변형 ‘CHANGE’ 판 뒤에는 핑크빛 나선형 거대 강철조각품 사이로 휴식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4차에 걸친 폴리의 예술적 재생을 통해 31개의 폴리아트가 생겨 광주광역시 도심 반경 5㎞를 거대 갤러리로 만들었다. 광주읍성의 인정, 민주주의, 아르누보형 일상과 예술의 조화, 빛고을 다운 빛의 미학 등 속뜻을 담았다. 100여m만 걸어도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폴리 찾기 도보여행’은 요즘 전국 MZ세대 여행자들의 챌린지 감으로 뜨고 있다. 소통의 오두막, 열린 장벽, 유네스코화장실, 꿈집 등 이름만 들어도 정감이 간다.
어린이 키 만한 자연석 3개를 쌓고 초록,검정,파랑색을 입힌 ACC매직마운틴은 한국의 고인돌, 무등산주상절리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과 인공의 차이와 유사함을 말해주는데, 자연스럽게 ACC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전체 16만 1237㎡의 ACC 부지 중 옛 도청건물 등이 있는 민주평화교류원 구역과 어린이 문화원을 제외하고 모두 ‘열린 지하공간’에 들어간 점에서 겸손이 느껴진다. 중심부에 빛이 들어오고 이를 잘 분산시키는 ‘빛의 숲’ 지혜가 발현돼 지하라도 밝다.
5성급 항공사의 프리스티지 라운지 보다 좋은 열람실의 문화정보원, 작가들이 국민과 소통하며 창작하는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5개원으로 나뉜다.
▶코로나 블루 치료제로서의 광주 예술·미식=ACC에선 내년 2월말까지 팬데믹을 겪으면서 달라진 세상을 디지털 미디어 및 초현실주의 예술로 구현한 ‘포스트휴먼 앙상블’과 24일까지 이어질 독립영화제, 어린이문화원에서 만나는 키르키즈스탄-한국 합작 ‘이식쿨 호수의 술루우수우’ 읽기 등이 눈에 띈다.
포스트휴먼 앙상블은 ‘뉴노멀’을 예술과 기술로 표현했다. 식물인 대파가 몸 관리하는 그림, 코로나종말처리장치, 코로나블루 뇌파측정, 심리예술, 방탄소년단 민윤기(슈가) 시약 등 감정의 묘약을 색감으로 표현하는 예술 등을 보여준다.
ACC에서 몇백m만 가면 비움박물관을 만난다. 내 누님 같은 풍모의 이영화(75) 관장이 잊혀져 가는 민속유물 2만5000여점을 모았다. ‘지나간 세월은 비었지만, 그 자취에 담긴 뜻을 꽉 찼다’는 의미다. 신혼부부가 함께 베던 긴 베개, 자손없는 영혼을 위한 추모의 상차림 걸신상, 가난한 집 차례상에 오른 나무생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한국형 조각장르 자개장 등이 모여있다.
내년 씨앗을 담아두는 뒤웅박은 ‘새끼 같은 씨앗을 보며 자식 농사도 뒤웅박처럼 하라’는 것이 참뜻이라면서, 항간의 여성비하적 뜻은 본질이 아니라고 이 관장은 강조한다.
어디든 다 맛있는 남도미식의 메카 광주에서 동명동 카페거리의 3대 터잡이인 플로리다의 달구나라떼·체리팜, 최고당 돈까스, 사이공장의 쌀국수는 필수먹방이다. 남광주시장의 부추순대, 유서깊은 한옥정원 미미원의 육전, 아구와 갑오징어의 하모니 동명동 아갑찜을 빼면 허전하다.
듬뿍 듬뿍 많이 주는데, 뚜벅이 예술기행이므로 소화제는 필요 없겠다. 희망을 얘기하는 지금, 빛고을 광주가 나눔이 있는 예술와 미식으로 국민들에게 정감 어린 손짓을 하고 있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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