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
딸 고등학교때 아이 낳고 이혼
조부모, 친자식처럼 손자 키워
1·2심 ‘가족관계 중시’ 입양 불허
대법 “아동의 행복 고려” 전향적
손주를 자식처럼 키워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입양을 통해 양부모가 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아이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주어진 여건에 따라 이러한 형태의 입양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선례가 없는 이 법리를 대법원에서 받아낸 이는 지방의 한 법무사였다.
울산시 로뎀 법무사사무소의 김영욱 법무사는 11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면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처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 기준을 통해 앞으로는 입양 사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이 함께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는 선례를 만들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할 가치가 있는 경우, 사회에 미치는 파급이 큰 사건을 주로 심리한다. 사건 당사자를 대리해 전원합의체 판결이나 결정을 받아내는 것은 경력이 오랜 변호사들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 법무사도 1심과 2심에서 모두 입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진 않았다. 하지만 미성년자 입양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한 민법 조항의 입법 취지는, 가족관계 질서 뿐만 아니라 아이의 복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해 대법원 판단을 받기로 했다. 다만 김 법무사가 맡은 사건의 아이가 실제 입양이 될 지는 미지수다. 대법원은 조부모가 손주를 입양하겠다고 하는 경우 신청을 받아주라는 게 아니라, 개별 사안마다 어느 쪽이 아이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따지라고 결론냈다.
김 법무사가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네 살이던 아이는 새해 나이로 아홉 살이 됐다. 초등학교 입학할 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빠 엄마 역할을 했고, 지금도 아이는 친부모로 알고 있다. 1심과 2심은 가족관계질서를 우선시해 입양을 허가하지 않았다. 대법원 결론에 대해서는 가족 제도 외에도 아이가 친부모를 알 권리가 침해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아동이 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김 법무사 역시 일방적으로 조부모가 친자관계를 숨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김 법무사는 “(사건 당사자인 조부모도) 아이가 고등학생 쯤 되면 입양관계를 얘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알게 되면 염려스럽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라며 “대법원도 가족관계 질서도 중요하지만 아동의 이익과 행복을 먼저 고려해가지고 입양이 적합하다면 해주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입양은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에 대해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입양의 의미를 이해할 정도라면 설명해주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이현곤 변호사도 “가족 관련 판결은 하급심보다 대법원이 더 전향적인 것 같다”면서 “실제로 이런 일은 흔치 않게 있었다, 조부모가 출생신고 하는 방법으로 친모를 누나라고 부를지는 생각해봐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혈통의 명정성보다 자녀의 복리”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보통 사람들의 법률서비스 접근성 측면에서도 의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액의 수임료를 받는 로펌이었다면 당사자인 조부모가 3심 판단까지 받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아이의 친모는 고등학생 때 출산을 했고, 이혼한 친부와 함께 연락이 끊겨 교류가 없었다.
이번 사건은 A씨의 딸인 B씨가 고등학생 때 C군을 출산하면서 시작됐다. B씨는 C군을 낳기 직전 혼인신고를 했지만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협의이혼을 했다. C군이 생후 7개월이 됐을 무렵, B씨는 C군을 못 키우겠다며 A씨 부부 집에 두고 갔고, 그때부터 A씨 부부가 C군을 양육해왔다. C군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A씨 부부를 부모로 알고 ‘엄마, 아빠’로 부르며 살아왔다.
1심은 조부모인 A씨가 외손자인 C군을 입양할 수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C군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어 A씨 부부가 C군을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친생모는 어머니이자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좌영길 기자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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