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표준, 시험인증 등의 이유로 자유로운 상품 이동을 제한하는 무역 장애요소 TBT(무역기술장벽) 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요국 중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코로나 이후 자국 산업 보호 강화와 핵심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 주 요인이다. 정부 간 기술 표준화 협력 강화 등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TBT 건수는 3966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기존에 가장 높은 통보 건수를 기록한 2020년 3352건보다 18.3% 증가한 수치다.
TBT는 국가 간 서로 다른 기술규정, 표준, 시험인증절차 등을 적용해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저해하는 무역 장애요소를 말한다. 관세부과와 같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기업에는 수출을 지연시키는 ‘비관세 장벽’으로 통한다.
상의는 코로나로 침체된 자국 경제를 회복하고,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기술·표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기술규제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도국들이 에너지효율등급 규제 등 선진국의 기술제도를 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TBT 급증 원인으로 추가했다.
국가별 TBT 통보건수 순위로는 미국이 391건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126건, 한국 117건, EU 104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핵심기술 표준 및 인증 절차를 둘러싼 주요국 간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다.
팬데믹 이후 FDI(외국인직접투자) 규제, 상품무역 제한조치 또한 증가했다. 각국이 도입한 외국인 투자 정책은 전년 대비 40% 증가한 152개로 나타난 가운데 규제정책의 경우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21개→50개)했다. 이 여파로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한 해 글로벌 FDI는 전년 대비 35% 감소한 1조 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 규제의 확대는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가안보, 주요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 소유권 제한, 핵심기술 이전 제한 등 자국의 주요 산업 보호를 목표로 수립되고 운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은 전년 대비 63% 증가한 323개의 제한적 조치가 취해졌다. 이러한 조치는 광산물, 농산물, 섬유 등 원자재와 부품 장비 품목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상의는 올해부터 선진국을 시작으로 점차 ‘엔데믹(Endemic)’체제로 전환하면서 각국의 무역 제한 조치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또한 미중 간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에 따른 국제 교역질서의 불안정성도 심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상의는 정부 간 기술 표준화 협력 강화를 통해 TBT에 신속히 대응하고, 주요국과의 통상이슈 협력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기술 동향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기술규제에 대응하고 글로벌 상품·서비스 무역조치 동향의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성우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 속에서 주요국들의 공급망 재편과 기술 주도권 경쟁, 탄소 국경세 도입 등 새로운 보호주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정교해지고 있다”며 “향후 미·중·러 등의 헤게모니(hegemony) 경쟁을 근간으로 한 지정학적 불안이 더욱 부각될 것인 만큼 통상이슈에 대해 주요국과의 협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신속한 자체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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