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 안보이는 원가난

생산자물가 15개월째 상승세

공급자물가 8개월째 두자릿수 ↑

제품가격 반영 못하면 이익 감소

값 올리면 매출 감소 부메랑 걱정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8.5%)이 40여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도 지난달 10년 만에 4%대로 치솟은 바 있다. 이 같은 소비자물가 상승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서비스 원가가 올랐기 때문인데, 이를 제품값에 원활히 전가하지 못할 경우 이는 고스란히 이익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신속히 가격을 올릴 수 있더라도 수요 둔화에 따른 매출 감소 부메랑을 맞을 수 있어 기업들로서는 진퇴양난이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업들의 생산원가를 반영한 생산자물가는 지난 2월 전월대비 0.4% 상승, 두달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생산자물가는 작년 11월까지 13개월 연속 올랐다가 12월엔 보합을 기록한 뒤, 올 1월을 시작으로 다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2월 생산자물가는 작년 2월보다 8.4% 상승, 전년동월대비 기준으로는 15개월째 오르고 있다.

이중 공산품은 1년 전보다 14% 올랐다. 석탄·석유제품은 59.6% 상승했으며 1차금속제품과 화학제품은 각각 31.6%, 15.2%씩 뛰었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휘발유가 작년 2월보다 73%, 석유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도 61.8% 상승했다. 화학산업의 기초소재인 에틸렌 가격도 같은 기간 32.8% 올랐으며 일반합판(36.2%), 합성섬유직물(7.7%), 유리섬유(8.7%), 보통철선(6.0%), D램(13.8%), 선박용엔진(6.1%) 등 다른 공산품목도 높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생산자물가에 수입품을 포함한 국내공급자물가도 지난 2월 전년동월대비 13.2% 올라 8개월째 두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생산자물가나 공급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발,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다시 기업의 매출 감소 및 실적 둔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에틸렌 가격은 지난 1일 기준 현재 톤(t) 당 1360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1020달러/t)보다 33%(340달러) 증가했다. 나프타 역시 1일 기준 888.5달러/t로 전년동월대비 58%(327달러) 상승했다. 고철값은 3월 현재 t당 70만원으로 1년새 67%(28만원) 증가했으며, 전기동 값은 7일 현재 1만292달러/t으로 같은 기간 15%(1310달러) 올랐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공급물가지수는 제조업 기업의 원가율 변화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는데, 2월에는 전년대비 상승률이 2008년 수준에 도달했다”며 “시차를 두고 기업의 원가율에 영향을 줄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업종별로 원가율 변화 수준에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고 에너지(유틸리티), 비철·목재, 화학, 철강, 상사 등의 순으로 원가 부담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가 상승에도 정제마진이 동반 상승하면서 정유사들의 실적은 비교적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석유화학 업체들인데, 유가 상승과 러시아산 수입 차질이 빚어지면서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대 수출국인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돼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최근 중국내 관련 설비 증설이 이어지는 등 ‘삼중고’(원가상승·수요부진·설비경쟁)를 겪고 있다.

최근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항공사들도 원가 비상에 걸렸다. 지난주 미국 동부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318달러로 41년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반 원유 값의 3배 수준이다.

항공유는 경유와 성상이 유사해 정유사들이 최근 발생된 경유 쇼티지(공급부족)에 대응해 항공유를 경유로 전환한 것이 가격을 크게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다. 통상 유류비는 항공사 전체 운영비의 20~30%를 차지한다. 유가 상승시 유류할증료를 운임에 포함시키지만 이를 통해서도 100% 보전이 어렵다. 파생상품거래 등을 통해서도 항공유 변동 위험 대비를 하고 있지만 업황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작년에 이어 연초부터 수주량의 빠른 증가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조선사들도 선박용 후판(2~5㎝ 두께의 강판) 가격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 후판값은 건조 비용의 약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수주계약을 많이 해도 이 가격이 계속 오르거나 신조선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

현재 조선사들은 포스코 등 철강사들과 상반기 후판값 협상을 진행 중이다. 조선사들은 작년 3·4분기 가격을 올린 만큼 이번에는 인상이 어렵다는 입장인 반면 철강사들은 철광석 가격 상승분을 후판에 반영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접점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철강사들도 철광석 뿐 아니라 석유, 석탄 등 제조 에너지 비용이 늘고 있는 상황인 데다 저탄소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재원 확보에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서경원 기자


gil@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