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대입시험 성적이 발표되면 수석 학생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해마다 “교과서와 학교교육에 충실했다”는 단골멘트가 함께했다. 아마도 교과서가 교육자료 중 가장 중요해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들이 1등의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되지 않았을까? 대학교육에서도 대부분의 과목마다 기본서라는 것이 있어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실제 행정을 하다 보면 내가 배웠던 교과서나 기본서에 나온 내용과는 다르게 작동되는 것이 많다. 교과서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중에서 ‘공사(보통 공기업이라는 말로 통칭되기도 한다)’라는 제도는 행정학 기본서의 내용과 너무나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행정학 기본서에는 ‘공사’란 민주성과 능률성이라는 양대 이념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생겨난 조직이다. 정부 기업의 관료제화와 주식회사형의 복잡성을 극복하고 운영의 독창성 내지 자주성을 살림으로써 공공성과 기업성을 조화시키는 이상적 조직 유형이다.
현실행정에서 바라본 공사는 어떨까? 한 마디로 ‘주인 없는 조직’과 유사하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이사회도 있고, 경영진과 노조도 있고, 관리감독하는 상위 기관도 있으며, 심지어 의회의 감사 대상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인인 국민은 언론에 공개되는 피상적 정보로만 접하고 실질적인 통제 수단이 없다. 사공은 많은데 배의 주인은 없는 형국이다. 사공은 많고 주인이 없다 보니 공사 본연의 목적보다 조직원 자신들의 이익추구가 우선시되는 경우도 있다. 경영진도 고용된 직원의 한 사람이다 보니 노사 협상이 노노 협상이 되기도 한다.
공사의 주요 자리는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문성보다는 정치적 색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공사는 공무원과 유사한 신분 보장에 높은 임금에다 사적인 이익까지도 추구할 수 있어 꿀떡과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결국 관료제와 민간기업의 장점을 추구한다는 애초의 공사 설립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단점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와 동떨어진 행태가 나타난다.
다른 또 하나는 시민단체의 행정 참여다. 행정학 교과서에 따르면 시민 의견을 행정에 투입하는 통로로서 시민참여는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것보다는 단체를 만들어 참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에 보통 시민단체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단체가 행정에 대해 제안이나 비판을 하는 경우 교과서처럼 행정의 민주화란 측면에서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관이 직접 행정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 민간에게 일부 집행 기능을 맡기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시민단체가 여기에 참여한다. 이때 제안이나 비판만을 하던 일부 시민단체가 행정 절차나 규범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시로 관료조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시민단체들은 시민이 참여했다는 그 자체만을 강조하면서 과정이나 세부 집행은 좀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행정 참여는 교과서에 말하는 행정의 민주화라는 목적의 실현보다는 시민단체의 이익극대화라는 오류 속에 빠지기 쉽다. 시민단체 존립의 정당성까지 의심받게 되는 경우도 나오는 것이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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