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숭불,조선백자-숭유 이분법 경고
보,궤 등 양호한 모습의 유교적 완형 제기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고려는 청자, 조선은 백자라는 이분법은 틀렸다. 고려는 불교 숭상, 조선은 유교 숭상이라는 이분법도 정확치 않은 역사교육인 것으로 드러났다.
강진 청자요지에서 조선에도 왕실 상대 대량 납품이 있었고, 이번엔 용인 백자요지에서 고려왕실에 대량 납품한 사실이 밝혀졌다. 고려왕실은 유교를 숭상해 국가 제사때 엄격한 의례를 한 사실도 재삼 확인됐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용인시와 재단법인 서경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용인 처인구 이동읍 서리 고려백자 요지(사적)에서 고려 초기의 백자 생산관련 시설과 왕실 제기가 출토됐다. 이 요지는 1980년대 호암미술관이 고려 시대의 자기 가마터를 조사하여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1989.1.14.)이다.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고려 초부터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이다. 1984년부터 3차례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해 건물지와 답도(통로), 계단, 저장구덩이, 폐기장 등 백자 가마 관련 시설이 확인되었고 유물로는 고려도자의 가장 이른 형태인 선해무리굽 백자완(사발)을 비롯하여 각종 제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들은 이곳이 고려 초기부터 백자를 생산하면서 한편으로는 왕실에 제기를 공급한 주요 생산지임을 알려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선해무리굽은 고려 초기 청자나 백자 첫사발(완)의 굽형태 중 하나로 굽의 접지면이 둥근 띠를 이룬다. 해무리굽에 앞선 형식으로 중국 오대(五代) 시기에 제작된 옥환저(玉環底)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오대 도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조사지역 북쪽 건물지 외곽 구덩이 한 곳에서 보(簠:벼와 조를 담는 그릇으로 외면은 네모난 형태, 내면은 원형), 궤(簋:기장을 담는 그릇으로 외면은 원형, 내면은 네모) 등의 왕실 제기와 갑발(匣鉢:가마 안에서 재가 묻거나 불길이 직접 닿지 않도록 도자기에 씌우는 큰 그릇) 등 2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대부분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완형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사례는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와 궤는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삼례도’와 ‘고려도경’ 등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왕실의 제기로, 고려도자 연구는 물론, 왕실의 통치철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도자제기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던 고려 왕실이 국가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기물로 1059년 (고려 문종 13년)에는 제기도감(祭器都監)까지 설치하여 관리하기도 하였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양호한 상태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건물지 일원은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내에서 왕실 제기를 공납하기 전에 선별작업을 하던 곳이거나 임시 보관소, 혹은 공납 후 불필요한 제기를 일시에 폐기한 장소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초중고-공무원 시험 국사 문제 다음 중 틀린 것은?에서 고려청자 조선백자 이분법에 빠진 나머지 ‘고려 왕실은 백자를 중시해 국가 제사때 썼다’는 것을 답으로 고르면 안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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