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기존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고, 모든 제도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기득권의 약화나 해체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1791년에 정조가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것은 시전상인에게 도성 주변의 상업독점권을 보장한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개혁인 동시에 시전상인의 기득권 해체였다. 그 결과는 민간의 상업활동 활성화와 상품화폐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시전상인은 기본적으로 조정에 물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지만 궁궐에 장례가 있거나 중국 사신 접대를 위해 필요할 때 물품을 조달하고 국역을 부담하기도 했다. 재정이 궁핍했던 조선 조정은 시전상인의 그 역할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상업활동 독점권과 단속권을 부여했던 것이다. 금난전권 폐지 5년 전 모든 시전상인이 금난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전면 확대·강화했던 이는 바로 정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전상인의 필요성과 조정에 대한 기여를 인정했던 것 같다. 모든 제도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필요가 전혀 없어서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월등히 커지고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자신이 확대했던 제도조차 정리하는 결단력은 정조가 왜 개혁군주로 불리는 가를 보여주는 이유이다. 시전상인들의 엄청난 반발이 이어졌지만 정조는 폐지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우리는 6·25동란의 폐허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산업강국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수많은 근로자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근로자들의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법률인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기업과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이 허용하는 범위에 맞춰 연공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임금제도와 통일적인 근로시간 규율을 다듬고 적용해왔다. 연공급적 임금 체계와 통일적 근로시간제는 산업화 과정을 지탱한 법제도로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 구조와 일하는 방식은 불과 몇 년 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MZ세대는 성과와 능력에 비례하지 않고 단지 근속 연수가 높으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제 임금 체계가 불공정하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경직된 틀은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신상품과 신기술을 개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현재 기업활동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제는 지나치게 활용 폭이 좁다.
우리는 지금 산업화시기의 금과옥조였던 구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규율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해야만 하는 대전환기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능력과 성과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신입사원의 1년 이내 퇴사율이 28%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경직적인 고용보장제도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인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기존의 임금·근로시간법제를 유지하고, 고용보장을 강화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총파업을 습관처럼 시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원했던 민간 상인과 금난전권을 통해 독점권을 고수하려 했던 시전상인의 대립을 떠올리면 이상할까? 18세기 조선에 비해 세계 정세의 변화와 열강의 발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지금 디지털 전환으로 대표되는 산업과 일하는 방식의 빠른 변화도 우리만 경험하는 현상이 아니다. 경쟁국들은 더 유연하고 빠르게 변화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시대, 어쩌면 우리에게 머뭇거릴 시간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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