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 맹독성 해양생물의 출현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제주도 바다에 맹독을 지닌 문어나 바다뱀이 나타나고 있다. 아열대 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맹독성 해양생물이다. 제주도에서 주로 관찰되지만, 점차 출현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뜨거워지는 바다의 후폭풍이다.
26일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의 ‘2022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해양에서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던 맹독성 해양생물이 출현하는 건 2000년대 이후부터다.
가장 대표적인 게 파란선문어다. 위협을 느끼면 머리나 다리 등에 파란 선이 생기는 문어로, 침샘에 테트로도톡신이란 맹독을 지니고 있다. 복어 독보다 강한 맹독으로, 아주 적은 양으로도 생명을 위협한다. 날카로운 이빨이 있고 침샘에 독을 품고 있어 만지는 것도 위험하다.
파란선문어는 2012년 제주연안에서 처음 발견됐다. 작년까지 총 18마리가 관찰됐는데 그 중 절반(9마리)을 제주도가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에선 이제 5월, 8월, 10월, 11월 등 출현 시기도 계절과 무관하다. 제주도 외엔 부산, 울산, 남해, 여수 등에서 파란선문어가 출현했다.
열대·아열대 서식종이면서 맹독을 지닌 넓은띠큰바다뱀도 이젠 국내에서 자유롭지 않다. 코브라과에 속하는 넓은띠큰바다뱀은 단 몇 방울의 독만으로도 신경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 넓은띠큰바다뱀은 2017년 제주 서귀포 연안에서 처음 포획됐다. 출현 빈도도 점차 늘고 있다. 이 역시 제주도가 9마리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외에 전남 여수(1마리), 부산(1마리) 등에서 관찰됐다.
독성해파리도 극성이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2017년 이후 급격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2년 동안엔 특보 기간이 140일 이상 유지되기도 했다. 국내 연근해에서 출현하는 독성해파리는 11종이며, 작년의 경우 총 10종의 독성해파리가 출현했다. 유령해파리, 야광원양해파리, 작은상자해파리 등은 작년에 최근 5년 중 가장 많이 출현했으며, 출현건수도 지속 증가 중이다. 해파리 증가는 여름철 고수온·겨울철 저수온 등 수온의 계절별 양극화가 심해진 게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맹독성 해양생물이 출현하고 독성해파리가 기승을 부리는 건 결국 바다가 점차 뜨거워진 탓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해역은 지난 54년(1968~2021년) 간 약 1.35도 수온이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수온은 0.52도 상승했다. 국내 해역이 약 2.5배 더 뜨거워진 셈이다.
특히, 동해안의 수온상승이 심각하다. 작년 동해는 전 세계에서 평년 대비 수온 상승이 가장 높은 해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의 7월 평균 표층 수온은 평년 대비 2~6도 높았다.
국내 연근해 수온은 2100년까지 지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수산원에 따르면, 2050년엔 현재 대비 약 1~2도, 2100년께는 약 2~4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수온 상승에 따라 해역별 어종도 변화 중이다. 2000년대 이후 꼼치류는 남해에서 어획량이 감소하고 서해에서 증가하고 있으며, 방어류나 아귀류는 남해에서 감소하고 동해에서 증가 중이다. 홍어류는 서해에서 감소하고 남해에서 증가하고 있다.
아열대 어종 출현은 급증세다. 제주연안에서 2012~2021년까지 어획시험(자망, 통발)으로 어획물을 분석한 결과, 총 177종 중 74종이 아열대 어류로 집계됐다. 아열대 어종 출현율은 2012년에 45%를 기록한 후 36~44% 수준을 기록하다가 2020년에 47%로 가장 높았다. 남해안도 아열대 어종 출현율이 증가하고 있다. 2015년 8%에서 2021년엔 12%로 늘었다. 남해안 해역에서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1마리꼴로 아열대 어종인 셈이다.
국내 수온 상승 전망 최대치(RCP 8.5,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의 저감없이 배출이 증가된다는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경우 양식 김 생산 가능 기간이 축소되는 등 양식업에도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원 측은 “수온 상승과 환경 변화로 아열대 어종 출현 증가와 주요 수산자원의 서식지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