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의 아이돌ㆍ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서편제’로 두번째 뮤지컬 도전

외면 당하는 우리 소리의 현실

때때로 다가온 외로움 커져가

대중과의 간극 좁히고 싶고

우리 소리의 참맛 알리고 싶어

“소리를 중심에 둔 장르 확장”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가 ‘서편제’로 두번째 뮤지컬에 도전 중이다. 그는 “뮤지컬 무대는 어찌 보면 가장 큰 일탈”이라고 말했다. [페이지원 제공]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가 ‘서편제’로 두번째 뮤지컬에 도전 중이다. 그는 “뮤지컬 무대는 어찌 보면 가장 큰 일탈”이라고 말했다. [페이지원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소릿길’을 찾지 못한다며 아버지께 꾸중을 들은 동호(김준수)에게 송화(차지연)는 ‘사랑가’ 한 대목을 하자고 청한다. “니가 춘향, 내가 몽룡.” 그 말을 듣고 기가 찬 동호는 “내가 왜 춘향이냐”며 묻는다. 돌아오는 한 마디. “누가 봐도…” 객석은 긴장이 풀어지며 웃음이 터진다.

2013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후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은 도맡았다. 연출자마다 김준수를 찾으니, 독식에 가까웠다. 급기야 ‘트로이의 여인들’에선 ‘파멸의 근원’인 절세가인 헬레네 역까지 맡았다. 장르를 넘어 무대에 선 김준수 ‘개인의 서사’가 이어졌다.

‘국악계의 아이돌’, ‘국악 프린스’로 주로 불렸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김준수(31)는 이름 옆의 화려한 수사를 내려놓고 ‘신인’이 됐다.

“뮤지컬 무대는 어찌 보면 가장 큰 일탈이에요.”

‘서편제’는 김준수에게 두 번째 뮤지컬 무대다. 지난해엔 이지나 연출의 ‘곤 투모로우’로 첫 무대에 도전했다. 공연 막바지에 들어선 그는 “뮤지컬 무대는 아직도 설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라고 했다. “관객들이 낯설어하는 시선이 있어 그것에 대한 부담”도 적지않다고 한다. “저 사람 처음 봤는데 잘 하네”, “다른 김준수였네”라며 소리꾼 출신 신인 뮤지컬 배우 김준수를 만나는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로 단련해온 김준수는 “‘서편제’의 동호와는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페이지원 제공]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로 단련해온 김준수는 “‘서편제’의 동호와는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페이지원 제공]

‘서편제’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소리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서는 동호 역을 맡았다. 아버지와 누나 송화를 떠나 록 밴드로, 제작자로 그만의 길을 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로 단련해온 김준수는 “동호와는 닮은 점이 많다”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오래도록 소리 수행의 길을 걸었다.

“열한 살 때부터 월출산에서 항상 소리를 연습했어요. 엄마 손을 잡고 산에 올라 부채 하나 들고 돌을 두드리며 노래했어요. 큰 명창이라는 꿈을 안고 연습하던 때였어요. 산에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은 소리 잘 들었다며, 오천원 짜리를 쥐어주기도 했고요. (웃음) 등산객들, 마을회관의 어르신들이 다 저의 관객이었어요.”

마음 깊이 품고 지켜온 ‘소리의 길’에선 그만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일찌감치 국악계에서 두각(2013년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21 KBS 국악대상 대상)을 보였지만, 소리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쌓여가는 생각도 커져갔다.

그는 “소리가 좋아 시작했지만, 소리가 외면당하고 관심이 멀어지는 상황에서 외로움도 항상 느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제 감정에 흠뻑 빠져 ‘흥보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데 친구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더라고요. 넌 그게 왜 좋냐고 하는데,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소리를 하면서도 대중과는 멀리 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소리의 매력을 알리고, 대중과의 간극을 줄이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제 안에서 커지더라고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가 ‘서편제’로 두번째 뮤지컬에 도전 중이다. [페이지원 제공]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가 ‘서편제’로 두번째 뮤지컬에 도전 중이다. [페이지원 제공]

대중과 우리 소리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창극배우로 무대에 서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16년엔 두번째 달과 협업했고, 최근엔 JTBC ‘풍류대장’, KBS2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가족 같고 편안한 창극 무대”를 벗어나 뮤지컬에 도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다양한 활동이 늘 마음 편했던 것은 아니다.

“방송에선 한복보다는 캐주얼한 옷을 입었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 항상 전화가 왔어요. 왜 소리꾼이 한복을 입지 않냐고, 그게 너의 뿌리이고 정체성이라고, 어떤 노래를 하든 소리꾼으로서 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스승님께 죄를 짓는 기분이었어요. 소리꾼으로의 자부심은 항상 컸는데, 선생님께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중 앞에서 우리 소리가 가벼워 보이지 않도록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판소리를 주제로, 소릿길을 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담은 ‘서편제’는 김준수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 대중과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처음 기회가 왔을 때 제 안의 두려움과 부담이 있었지만, 소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소리를 들려주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어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는 “창극 배우로 활동해왔으니,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보고 싶다”며 “연극·드라마·영화 등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싶은 게 욕심”이라고 했다.. [페이지원 제공]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소리꾼 김준수는 “창극 배우로 활동해왔으니,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보고 싶다”며 “연극·드라마·영화 등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싶은 게 욕심”이라고 했다.. [페이지원 제공]

신인 뮤지컬 배우의 두 번째 무대는 반응이 좋다. 무대에서 김준수는 대부분 정통 소리가 아닌 뮤지컬 넘버로의 음악을 소화한다. 그는 “소리꾼이 부르는 뮤지컬 넘버는 관객들에게 좀 어색하고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판소리를 해온 사람이 팝음악에 성악 발성 기반의 노래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서기 위해 소리의 맛을 넣기 보다는 담백함을 담으려 했다”며 “이야기에 집중해 감정을 담아 부르면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관객에게 닿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리꾼이 다져온 질 좋은 소리가 빛나는 대목도 있다. 극 중 동호의 밴드 오디션 장면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이 무대마다 다르게 등장한다. ‘적벽가’를 시작으로 ‘춘향가’의 하이라이트인 ‘어사출두’까지. 김준수는 “즉흥적으로 다섯 바탕 중 하나를 하고 있다”며 “관객들도 그 장면을 새로워한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엔 좋은 눈대목이 많아 맛보기처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장면은 동호가 부르는 ‘거대한 햇덩이’다. 응축된 감정이 토해나오는 소리꾼의 노래에 객석은 숨죽인채 무대 안으로 휩쓸린다. 20여년 넘게 단련한 소리의 질감과 깊이는 무대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김준수의 진가가 발휘되는 넘버다. 그는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 보면 연기가 아니라 내 안에서 진짜 울음이 터져 나온 적이 많았다”고 했다.

국립창극단에서 10년, 김준수는 이제 세상 밖으로 걸음을 떼고 있다. 그에게 다가올 10년은 더 큰 세상 안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는 “창극 배우로 10년간 활동해왔으니,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보고 싶다”며 “연극·드라마·영화 등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싶은 게 욕심”이라고 했다. 그 안에 변치않는 것은 소리꾼 김준수의 정체성이다.

“저의 여전한 본질은 소리꾼이에요. 제 뿌리가 단단해야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기더라고요.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어느 곳에서도 소리꾼 김준수가 될 수 있었어요.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 김준수가 어떤 소리를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떤 장르가 되든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싶은 열정이 제 안에 불타고 있는 것 같아요. 소리를 잃지 않고, 소리를 중심에 두되, 소리와 대중이 이어질 수 있는 매개체로 제 길을 확장하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