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등 재심사건으로 유명세
맡았던 사건 이야기 등 수많은 강연
“사건 공부는 강연에서 가치로 연결
중요한 인간 ‘존엄·인권’의 이야기”
최근 관심은 사형수에 관한 내용
가해자에 대한 서사 부여가 아니라
서사에 담긴 ‘사회적 모순’ 보자는 것
박준영(48·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는 법조인으로는 독특한 인물이다. 통상 변호사들은 사건에 관해 잘 이야기하지 않고 그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끊임없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공론화한다. 논쟁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마다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쓰고, 댓글에도 일일이 답변을 한다. 강연에 나가서도 맡았던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모든 사건에는 사회적 문제가 담겨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고졸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례적인 경력과 재심 사건을 통해 유명세를 얻었지만, 정작 스스로 이러한 인간 승리의 표본이나 재심 전문가라로 내세운 적은 없다. 재심 전문가가 아닌, 사회에 ‘가치’에 관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하는 박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사회에서 가치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발언권이 생겼습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들어주십니다. 이럴 때일 수록 민감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합니다.” 박 변호사에겐 사건 의뢰가 적지 않게 들어온다. 의도와 무관하게 유명인이 되었고, 특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강연도 박 변호사의 일상을 차지하는 한 축이다. “사건을 공부하면 강연으로, 가치로 연결이 됩니다. 강연에서 재심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이나 인권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사건을 가지고 하니까 도움이 되죠.”
박 변호사가 최근 꺼내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사형수에 관한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사 중이다. 두 차례 합헌 결정했던 헌재는 지난 7월 사형제가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관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재에서 세번째 판단 앞둔 사형제 사건에서 만약 위헌결정이 나온다면 최연소 사형수에 관한 재심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사람을 죽인 건 끔찍한 범죄죠. 하지만 사건에서 사회성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런 범죄가 발생하는지, 성장환경이나 집단따돌림, 폭행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죠. 한 범죄가 저질러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작 박 변호사는 사형제에 관해 찬성이나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진 않다. 2011년 발생한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의 가해자 김민찬은 1992년생으로, 범행 당시 19세에 불과했다. 현재 59명의 사형수 중 최연소다. 전역을 9개월 앞두고 동료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박 변호사는 김씨가 전출을 요구했는데도 묵살된 점을 거론하며 “누구나 특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 전반에 정치적 올바름이 강조되면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가정환경이나 정신병력 등이 상세하게 알려질 경우 자칫 범죄를 정당화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는 그런 지적에 비판적입니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오래된 금언이 있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서사를 봐야 합니다.”
그는 범죄자의 서사를 보는 것이 범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서사에 담긴 사회적 모순을 함께 보자는 겁니다. 그걸 봐야 문제를 막을 수 있죠. 중곡동 살인사건을 맡으면서 피해자 유족을 대리했습니다. 유족과 소통하면서 서진환(살인 가해자)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하라고 합니다. 박 변호사도 우리 도와줬으니 하시라, 당신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범죄자의 서사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진정하게 피해자를 도울 수 있기도 하고, 잠재적 피해를 막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진정으로 피해자를 돕는 겁니다.” 박 변호사는 잔혹하게 시신을 훼손했던 오원춘 사건의 국선변호도 맡았다. “오원춘의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나는 조선족인데, 이 사건에서 차별받는 것이냐고. 처음엔 황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고, 자기가 저지른 범죄 에 책임을 못느끼나 싶었어요. 하지만 어떤 차별을 겪었길래 자신의 범죄사실에 대한 책임보다 차별을 먼저 꺼낼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서 모두 불편해하는 법조계 인사로 꼽히기도 한다. 과거사 사건을 다루면서 수사기관을 상대할 땐 진보진영에서 환영받았다. 주위에선 정치에 입문하라는 권유도 많았고, 실제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2019년 문재인정부에서 구성된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참여하면서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불법 출국금지나, 고(故) 장자연 사건 증언자인 윤지오 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멀어졌다. “예를 들어 김학의 차관 사건 같은 경우 당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걸 압니다. 주변 사람들도 우려를 이야기하고 불편해해요 사실. 그런데 저는 훗날 반드시 평가받는다, 나중에 법조인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람이 있었구나 반드시 평가받는다는 100퍼센트 확신이 있어요. 저는 민주당을 나름 애정을 갖고 비판합니다. 바뀌길 바랍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사권 조정이나 이른바 ‘검수완박’을 골자로 한 검찰 개혁에도 부정적 의견을 내면서 검찰 편드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박 변호사는 부인하지 않는다. “검찰 편든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약자들을 위한 겁니다. 왜냐면 법, 제도를 잘못 설계하고 운영하면 돈없고 ‘빽’ 없는 권력없는 사람들이 당하기 때문에요. 수사권 조정도 잘못됐습니다. 수사기관이 의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자들을 상대로 교묘하게 사기치는 인간을 잡을 수 있어야 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에 관한 수사를 보면 시민의 법감정에 맞게 처리되지 않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건은 TV에 나오지 않아요. 제가 재심 사건을 하면 책에서 언급한 검찰권 남용을 일반화하더라고요. 물론 본질적 고민은 필요하지만, 이제는 진범 풀어주고 그런 건 벌어지지 않습니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정치적인 사람들은 다 있지요. 하지만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데는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박 변호사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졌다. 목소리를 내면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업보를 쌓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거죠. 저는 저를 과대포장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운명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화성 사건이나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도, 내 명예를 위한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내 욕심으로 사람들을 밟아버렸어요. 예전 사건을 올려놓는 저는 얼마나 정의로울까요. 운명으로 내가 할 역할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섰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형사재판에서다. 항상 심문하던 입장에서 받는 입장이 되니 느끼는 점도 많았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처벌받을 수도 있는 당사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입을 떼는 게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증언으로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재심사건 하면서 침묵하지 말자, 아는 사람이 나서줘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막상 내가 안나서는 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증언을 하면서 권력이 부당하게 개입하는 일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경계하도록, 또 누군가에겐 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증언했습니다.”
변호사가 사건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사건을 다뤘던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도 중간에 뛰쳐나왔다. 조사단 안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해결을 보는 게 옳고, 밖에서 지적하는 게 그르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박 변호사는 이 지적을 뼈아프게 생각한다. “당연한 말입니다. 굉장히 부끄럽죠 사실. 조사단 머물면서 끝까지 했어야 했죠. 하지만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장면을 보면서 그 책임이 두려웠습니다. 밖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것 역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사실이 밝혀졌을 때 너는 뭐했느냐고 물을 거라 생각하면 두렵더라고요.” 박 변호사가 우려한대로, 김 전 차관 출국금지에 절차적 불법을 저지른 혐의의 공직자들이 다수 법정에 섰다. 장자연 사건을 왜곡하며 비판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윤지오 씨의 말도 거짓이었던 점이 드러났다.
업보를 쌓는다는 부담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싶어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강연을 쉴 예정이다. 맡고 있는 사건을 처리하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재심 사건에서 형사보상금을 받은 의뢰인들 일부는 적지 않은 돈을 박 변호사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사건을 맡아 소송을 하다 보면 공부가 된다. 공부를 하면 할 이야기가 생기고, 그의 글과 말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관해 토론할 계기가 생기기도 한다.
“저는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제 이야기를 누가 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다만 어느 순간 부터는 제 반성과 성찰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것이나, 사람을 힘들게 한 것,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들을 반성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좌영길·유동현 기자
jyg97@heraldcorp.com
dingd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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