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와 신대륙 발견에 유럽이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향신료 때문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육두구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동방무역을 독점한 베네치아공화국은 이집트에서 육두구를 구입, 유럽에 비싸게 팔아 엄청난 수익을 챙겨 유럽인들의 분노를 샀다. 초기 유럽 항해자들이 북미 대륙과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항로 개척에 나선 것도 베네치아의 갑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였다.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은 마치 그 시대의 우주 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도대체 육두구가 뭐기에 오랫동안 전쟁과 약탈의 중심에 있었던 걸까?
사회인류학 박사 아미타브 고시는 저서 ‘육두구의 저주’(에코리브르)에서 그 전말을 소상히 밝힌다.
육두구는 단순 향신료가 아니다. 신비의 약이기도 했다. 16세기 잉글랜드 의사들은 육두구가 당시 유라시아를 휩쓸던 유행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여겼다. 중세 말기엔 유럽에서 육두구 한 줌에 집 한 채, 선박 한 척과 맘먹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었다. 당시 향신료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육두구는 부와 사치의 상징이기도 했다.
1621년 얀 쿤이 이끄는 네덜란드 함대가 인도네시아 반다제도 화산 섬 말루쿠 반다인의 거주지를 불사르고 주민을 집단 학살한 것도 오로지 육두구 때문이었다. 반다제도는 당시 육두구의 유일한 생산지였다. 이 하찮은 식물을 점유하기 위해 네덜란드가 파견한 함대는 무려 18척의 선박을 포함, 50여척의 배와 200여 명의 병력을 자랑했다. 여기에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사무라이 80 여명도 있었다.
책은 1621년 4월 21일 밤, 반다인들을 추방하려는 네덜란드의 노력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던 터에 관리자 송크와 그의 고문들이 함께 잠자고 있던 회의장에서 램프가 떨어지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공황 상태에서 이들은 이 우연한 일을 합당한 어떤 신호로 받아들였고 마구 총을 난사했다. 그리고 일주일간 파괴와 학살이 벌어지게 되고, 진취적인 무역공동체였던 반다족은 더 이상 민족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이 사건은 이후 수백년 간 이어진 유럽 식민주의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반다제도 점령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향신료를 독점함에 따라 네덜란드는 유럽 전역에서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금전적 이득 또한 천문학적으로 뛰었다. 초기 투자금의 4배를 웃돌았다. 이 같은 수익이 나중에 네덜란드 황금기로 알려진 17세기에 미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는 밑거름이 됐다. 향신료는 그 시대의 미술 작품, 특히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장르인 정물화에서 중요 부분을 차지했다.
주목을 끄는 대목은 네덜란드 황금기 미술에 대한 서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저자 자신이 반다제도의 사건 자료를 찾는 데 애를 먹었듯 당시 제노사이드를 언급한 책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대학살로 규정,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헤치며, 이 학살에 담긴 비인간화와 대상화, 폭력, 자연파괴의 문제를 제기한다.
코로나 19 팬데믹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한창이던 와중에 책을 집필한 고시는 육두구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와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과 착취를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민족과 문화, 식물 종의 파괴와 이주, 기후변화와 불평등까지 현재 전 지구적 문제의 근본 문제를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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