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무서운 건 인사 때문이다. 임기는 껍데기다. 국정철학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든 날아가기 십상이다. 데이비드 멀패스 세계은행(WB) 총재가 얼마 전 중도 퇴임한다고 했다. 임기가 1년여 남은 상황에서다. 밀려났다고 추정할 재료는 많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그는 지난해 9월 기후변화 행사에서 ‘인간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곧바로 사퇴 압력을 받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나가라는 얘길 에두른 것이다.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광야에 서게 되는 건 국적 불문이다.
이윽고 윤석열 정부의 실력이 나올 때인가. 국정 마스터플랜이 있긴 한 건지 회의적이었는데 경제 실핏줄인 금융에 대한 그립을 꽉 쥐려고 한다. ‘이자장사로 돈잔치’, 이 폭발성 짙은 단어 조합이 불을 붙였다. 다들 어려운데 임직원을 ‘돈쭐(돈으로 혼쭐)’내는 은행을 ‘혼쭐’내야 한다는 여론을 정부가 제대로 등에 업었다. 거친 말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약탈적(掠奪的). 검사 출신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 영업 방식을 이렇게 비판했다. 은행이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은 적은 없는데 업계 관행을 그가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두고 ‘건폭(建暴)’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돌격형 수사가 뼛속까지 밴 전직 검사들이 염화미소로 국정지지율을 올리려고 ‘하드캐리’한다고 해석할 여지도 다분하다.
권력의 서슬 퍼런 압박에 은행 등 금융권은 앞다퉈 대출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백기투항했다. 상대적 박탈감에 배가 아팠던 입장이라면 정의가 죽지 않은 것 같아 개운할 거다.
그러나 국정 운영은 엄포로 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6월 말까지 결과 도출을 목표로 민관 합동의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정답에 접근할 ‘족보’는 이미 나와 있다.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려면 인가 세분화(스몰라이선스)를 통해 특화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임직원 보수가 적정한지는 주주가 점검(세이온페이)하거나 과하면 토해내도록(클로백) 장치를 마련하자는 내용 등이다.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무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특히 그동안 각종 민관 TF에선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중요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수북해도 당국자가 승인하지 않으면 민간의 제안엔 먼지가 쌓였다.
미국은 은행 간 인수·합병(M&A)으로 시중은행의 숫자가 감소했다지만 무려 4523개에 달한다. 세계 1위다. 무한경쟁 속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혁신을 낳았다. 직불카드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상장주식을 주는 은행이 있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통한 비접촉 결제 서비스도 한다. 한국이었다면 부지하세월이었을 환경이 금융 선진국에선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금융권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고 싶다면 당국자는 권한을 내려놓을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먼저 자문해야 한다. 쏟아내야 하는 건 거친 말이 아니라 묘안을 모을 혜안이다. 실력이 있다면 창구지도처럼 깐깐하게 간섭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 자율성을 부여해도 관리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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