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필요 없어
가족거래 또는 고액 근저당권 설정 추측
부동산 침체기를 틈타 가족, 친인척 간 편법 증여를 노린 불법거래행위가 매매시장을 넘어 전세시장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동대문구에서 중대형 평형 매물이 최고가 대비 90% 하락한 전세 계약이 체결되는가 하면, 송파구 대표 대단지 ‘헬리오시티’에선 직전 가격보다 50% 이상 떨어진 거래도 이뤄졌다. 이렇듯 전셋값 하락세가 가속화되면서 서울 곳곳에서 가족 간 거래로 추측되는 이상거래가 빈번해지는 추세다.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동대문구 답십리동 ‘청계한신휴플러스’ 전용면적 107㎡는 지난 20일 전세보증금 1억원에 거래됐다. 계약기간은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1년이다.
이는 최고가는 물론, 부동산 시장 침체로 전셋값이 많이 하락한 현재 시세보다도 5~6억원이 낮은 가격이다. 청계한신휴플러스 동일 면적의 전세 최고가는 9억2000만원, 시세는 7억 초반~후반대로 형성돼 있다. 같은 평형의 최근 전세 거래들을 살펴봐도 5억5650만원, 6억3000만원 등의 금액으로 계약이 체결됐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가족 간 거래로 추측되는 이상거래’라고 추정했다. 답십리동 중개업소 대표 A씨는 “가족 간 대출을 위한 거래이거나, 주택을 살 수는 없는데 가족간 증빙 자료는 남겨야 하니 (1억원 전세 계약 사례처럼) 조금씩 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중개업소 대표 B씨는 “부모가 주택 매매계획이 있는 자녀에게 돈을 물려줄 때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전세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물려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부모와 전세 계약을 하면 만기 시 자식은 전세보증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택 매매 시 자금조달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되는데 전세 계약은 자금조달계획서를 낼 필요가 없으니 전세를 활용하는 것”이라며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면 부모에게 빌린 자금 이자 내역을 증명해야 하고, 현금으로 증여하려면 증여세가 많으니 강남 부유층 부모 사이에선 자식들을 전세를 살게 해 돈을 물려주곤 한다”고 덧붙였다.
주택 매매 시 규제지역별, 주택 금액별 기준에 따라 제출이 의무화된 자금조달계획서에는 금융기관 예금액, 부동산 매도액, 현금 등 집을 매매하는 데 사용된 자금과 대출금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미신고 시 과태료 500만원, 허위신고 시 거래금액의 2%를 과태료로 제출해야 한다. 주택 매매 시 불법거래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중 하나다. 그러나 전세 계약은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는 만큼 임대보증금 형식을 빌려 자식에게 편법 증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송파구의 대단지 헬리오시티에서도 나타났다.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한 아파트에 싼값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다.
헬리오시티 전용 110㎡(18층)는 지난 21일 전세보증금 5억7500만원에 계약됐다. 현재 시세가 12억~13억대로 형성돼 있고, 해당 동이 지하철과 가까운 로얄동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가족 또는 특수관계인 간 거래일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 실제 해당 아파트 등기를 확인한 결과, 해당 주택에 거주하던 부모가 지난 2021년 11월 결혼해서 따로 사는 자식들가족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 6명의 수증자들 주소와 생년월일을 확인했을 때 두 아들 가족에게 각각 절반씩 증여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 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주택에 고액의 근저당권이 있어 전세보증금이 낮게 책정됐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공인중개사들은 ‘이를 고려해도 5억대 보증금은 너무 낮다’는 반응이다.
해당 집에는 약 4억4000만원을 채권최고액으로 하는 근저당권 등기가 설정돼 있었다. 등기원인은 ‘납세담보제공계약’으로 확인된다. 납세담보제공계약은 국가가 제때 조세(양도소득세, 증여세 등)를 납부하지 않은 납세의무자로부터 채권을 보존하기 위해 받는 담보를 말한다. 즉 6명 중 4명의 수증자가 증여세를 마련하지 못해 세무서장을 근저당권자로 등기를 설정한 것이다.
최근과 같이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때는 세입자들이 선순위 대출 또는 근저당권이 있는 집들을 꺼리다보니 급하게 집을 내놓다보면 보증금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헬리오시티 상가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집값이 큰 폭으로 낮아지며 저당권이 설정된 집은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보전받지 못할까 무서워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집은 최근 매물이 25억 수준인 점을 감안할 때 4억원 근저당권이 있어도 5억원대 보증금은 너무 저렴하다. 가족 간 거래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했다.
서영상·신혜원 기자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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