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실패에 고무된 자본주의 인간을 종속시켰다는 비판에 직면 21세기 거대한 변화의 물결속에서 숭고한 인간가치 중심으로 재편돼야
며칠 전 친분이 있던 교수로부터 음악공연 초대를 받아 실내악 공연을 관람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3중주와 피아노 4중주를 비롯해 이신우 교수의 피아노 4중주곡이 무대에 올려졌다. 브람스의 두 곡은 그의 만년과 초기의 실내악 작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면, 소리 자체에 중점을 둔 후자의 곡은 쇤베르크 이후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도 소리의 절대성에 집중하고자 하는 서양 현대음악의 특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연주자들이 보여준 열정은 관객들의 가슴에도 기분 좋은 감성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됐다. 연주자는 악기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관객이 감동을 하는 연주의 순간은 아마 연주자가 악기와 완전히 동화되어 그가 마치 음악을 전달하는 매체처럼 느끼게 해줄 때일 것이다.
사실 음악의 악기처럼 특정 정보를 전달하는 모든 매체는 미디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미디어는 정보와 함께 어떤 일정 가치도 전달해준다. 여기서 ‘어떤 미디어’는 인간에게 유익한 가치를 전달해주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음악의 연주자가 그렇다. 연주자는 한 곡에 담긴 정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해내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다. 이런 연주자는 음악의 가장 훌륭한 매체가 된다. 예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창의적인 작업은 모두 이런 가치 창출의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그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활동도 일정 가치와 연관돼 있다. 20세기 대표적 정치사상가의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는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노동(labor)과 작업(work)을 이런 점에서 구분해, 전자를 생계와 관련된 고된 일로 본 반면, 후자를 더 가치있는 창조행위로 인식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 이후 서양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과 함께 인간에게 가치를 창출해주는 두 가지 핵심 미디어로 인식했다. 아렌트가 간파한 것처럼 스미스의 주장은 다소 순진한 공리주의적 시각이다. 분업적 노동을 통해 개인의 경제적 부(富)가 늘어나면 국가의 부도 늘어날 것이라는 단순한 시각은 물질적 양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는 유물론적 시각의 단순함과도 연관된다. 이런 시각은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적 규모와 자본의 양을 늘리는 데 기여했지만 최근 자본주의의 위기로 그 치명적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말 사회주의의 실패를 보고 자부하던 현대 자본주의가 이제는 거꾸로 인간의 가치를 자본과 경제적 가치의 종속물로 전락시켰다는 세계적 비판에 직면해있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활동 중 주로 이론적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노동만을 경제적 가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데 기인한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위가 가치를 전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자본주의의 모든 경제활동은 인간의 가치와 연관되어야 한다. 또 자본주의가 고안한 다양한 상품들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경영학 교수 로저 마틴이 최근 주장한 성공적 경영을 위한 생각의 디자인에 앞서 인간가치의 디자인이 선행돼야 할 것이며, 이것은 21세기 자본주의 경영의 화두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현대의 정보통신기술 또한 자신의 융합적 기술을 인간의 가치와 연결해 인간이 지닌 가치와 인간이 지향하는 사회의 가치가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21세기가 몰고 올 거대한 사회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다시 원점에서 인간가치 중심의 자본주의로 거듭날 수 있게 하고, 아담 스미스 이후 230년, 막스 베버 이후 100년 넘게 문제점의 먼지들로 뒤덮인 자신의 교과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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