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생일이라 저녁을 먹으러 주말에 식당에 갔다. 때 이른 한여름 더위가 시작해서인지 5월인데도 가족 모두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휴가지에서 사 온 반팔 칼라셔츠를, 어머니는 하늘하늘한 소재의 까만 반팔 셔츠를, 동생은 하얀색 면으로 된 헐렁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남편은 박시한 핏의 반팔 티셔츠, 기자도 ‘Earth(지구)’ 레터링이 프린트된 반팔 티셔츠를 착용했다.

그날 낮 최고 기온은 30도를 오르내렸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 식당에서는 얼린 홍시로 만든 디저트를 내줬다.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을 신고 있는 손님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닿는 자리를 묻는 이도 있었다. 영락없는 여름 모습이었다. 다만 이상 고온으로 찾아온, 뜻밖의 여름.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유통가도 전례 없는 ‘뉴시즌’을 맞았다. 바로 ‘여름 전 여름’ 시기다.

우선 숫자가 말해준다. 당장 백화점은 평년보다 열흘가량 빨리 에어컨을 켰다. 올해 4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신세계백화점의 여름 신발 매출은 지난해 7~8월 매출 비중의 90%를 넘겼다. 통상 6월 하순부터 시작되는 빙과류 매출 성수기는 일찌감치 찾아왔다. 5월(1~18일) 기준으로만 봐도 편의점 CU의 빙과류 매출은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올해 패션 플랫폼 W컨셉은 ‘바캉스룩’ 기획전을 지난해에 비해 2주가량 빠른 5월 중순부터 진행했다.

일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굳이 계절을 나누지 않는 ‘시즌 리스’ 방식이 업무에 속속 도입되면서다. 지난해에만 해도 ‘프리 서머(Pre Summer)’ ‘핫 서머(Hot Summer)’ ‘애프터 서머(After Summer)’로 여름을 쪼개 시기별로 상품을 출시했다는 한 패션 브랜드 대표는 “이런 개념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핫 서머 상품인 민소매와 짧은 바지는 7월 초부터 잘 팔려요. 그런데 올해는 5월부터 사람들이 찾는다니까요.” 그는 “1년의 절반인 6개월 동안 여름 옷만 만들다 간다”고 덧붙였다.

한국만 더운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40년 만에 제일 더운 날을 경신했다. 베트남은 이달 초 44.2도까지 올랐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17년 만에 가장 빠른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미국 시애틀은 50년 만에 가장 더운 5월을 맞았다. “인류는 살얼음 위에 서 있고, 얼음은 빠르게 녹고 있다.” 3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종합 보고서 공개 기자회견에 나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엄중하게 경고했다. 국제기상학계도 슈퍼 엘니뇨 영향으로 올해 역대급 무더위가 찾아올 수 있다고 발표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이 입고 있는, 때 아닌 5월의 반팔을 다시 유심히 봤다. 에코백처럼 거기에도 어떤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반팔 셔츠 안에 숨겨진 ‘진정한 비용’을 떠올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듯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