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최근 불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의 수혜 덕택에 주가가 급등세를 타고 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주가를 두고 미국 월가(街)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국면이 불가피하다는 측과 AI 반도체 관련 시장의 급격한 성장 덕분에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고평가됐다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추가 상승할 여력이 있다는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의 향방에 대해서는 직접 투자에 나섰던 ‘서학개미(미국 주식 소액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주식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까지도 주목하고 있다. 바로 소액주주가 639만명에 이르러 ‘국민주’로 불리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관련주의 주가가 엔비디아의 상황에 따라 등락을 오가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니덤, 오펜하이머, 모건스탠리, 번스타인, 로젠블랫 등 주요 투자은행(IB) 들은 엔비디아의 적정주가를 400달러 이상 수준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AI 반도체 관련 부문의 호조 덕분에 지난 1분기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덕분이다.
엔비디아는 올해 1분기 월가 전망치(65억2000만달러)를 크게 웃도는 71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2분기 매출액은 1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자체 전망했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71억5000만달러)를 53%나 넘어선 수치다.
조셉 무어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부문 실적은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시장 기대치에 못미쳤지만 2분기에는 x86 서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매출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며 불과 3개월만에 이같은 분위기 반전이 있었던 것은 생성형 AI 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언어모델(LLM) 덕분이었다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의 3일(현지시간) 기준 엔비디아 적정주가는 450달러로, 전날 종가(393.27달러) 대비 14.4% 높다.
스테이시 라스곤 번스타인 연구원도 “생성형 AI 수요의 급증은 데이터센터 실적의 1년동안 100% 가까이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번스타인이 제시한 적정주가 475달러는 2일(현지시간) 종가보다 20.8%나 높다.
엔비디아가 AI 기술의 핵심 부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 연이어 나오는 모습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가 분석가들 중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의견을 제시한 49명 중 41명이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다만, 단기 주가 급등이 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74.73% 상승했다.
기업 가치평가의 ‘대가’로 불리는 뉴욕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의 어스와스 다모다란 교수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엔비디아 주식을 매도했다고 밝히며 조정론에 불을 지폈다.
다모다란 교수는 시장 규모에 주목하며 “엔비디아가 오늘날 250억달러 규모로 추측되는 AI 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시장 규모는 10년 안에 최대 3500억달러로 커질 수 있다”면서 “이 시장을 엔비디아가 100% 장악하고 있다고 상정해도 현재 주가에 못 미친다”고 강조했다.
다모다란 교수는 결국 엔비디아가 하드웨어 기업이기 때문에 ‘시가총액 1조’ 클럽에 포함된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메타, 알파벳, 아마존 등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최종 사용자의 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사업에서 ‘롱테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엔비디아는 결국 또 다른 기업에 반도체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실적 개선의 정도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향후 엔비디아의 주가 흐름은 거액을 엔비디아에 쏟아 부은 서학개미들의 투자 성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엔비디아 주식 보관금액은 37억234만달러(약 4조8382억원)로 테슬라(120억3721만달러, 약 15조7302억원), 애플(50억4066만달러, 6조5871억원)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국내 증권가에선 엔비디아 주가의 흐름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의 앞으로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에 쓰이는 D램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1위로, 생성형 AI 수혜주로 꼽히는 엔비디아에 그래픽처리장치(GPU)용 HBM3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엔비디아의 고객사다. 삼성전자는 최근 기존 HBM에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하나로 결합한 HBM-PIM(프로세싱인메모리)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슈퍼컴퓨터(HPC), 데이터 센터 등 초고속 데이터 분석을 요구하는 인공지능의 산업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가 AI 투자 증가 관련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폭발적인 트리거가 됐다”며 “주가 반등 강도를 볼 때 트리거가 필요했을 뿐 추가적 수요 둔화 종료와 공급 축소 효과의 점진적 확대 등 업황 반등을 위한 조건은 이미 충족됐다는 점을 재확신하기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설령 단기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 측면에서 AI 효과가 빠르게 확인되지 않더라도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성이라고도 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한편, 올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30.56%, 47.07%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