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개정안 봇물
전문가들 “국가 자산 1경 시대…상황 맞게 현실화해야”
저축은행 “한도 상향에 예금 늘면 수익성 개선 가능”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 퇴직금 수령을 앞둔 50대 A씨는 최근 다시 금리가 오른 저축은행 예금을 살펴보고 있다. 재테크 카페를 둘러보던 중 ‘저축은행 예금은 이자를 포함해 예금자보호한도인 5000만원이 되지 않도록 4780만원만 넣어야 한다’는 글을 보고 여러 은행에 자금을 나눠 넣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최근 정치권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최대 1억원에서 2억원까지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어 이같은 ‘예금 꿀팁’이 바뀔지 주목된다.
재테크족 사이에선 이미 은행이 파산할 경우를 대비한 ‘4780만원 예금’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예를 들어 4780만원을 1년간 5.0% 금리의 월복리 예금에 넣어두었을 때 이자와 원금을 합치면 4986만8926원으로 5000만원보다 낮아 만일의 경우에도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도가 1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같은 조건에서 9500만원까지 예금해 원금과 이자를 합해 9911만1882원을 수령할 수 있는 셈이다.
국회에 따르면 최근 예금자보호한도를 최대 4배 상향해 2억원까지 늘리자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예금자보호한도란 금융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해주는 제도다.
지난 3월에도 예금보험금 지급한도를 1억원 이상의 범위에서 금융업종별로 구분해 정하고 적정성을 5년마다 검토하는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무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두 법안 외에도 실리콘밸리 은행(SVB) 사태 이후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리자는 내용의 법안은 여야를 합해 11개나 계류돼 있다.
법안들은 모두 큰 틀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최대 2배에서 4배까지 늘려 금융시스템 안정을 제고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디지털금융 환경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뱅크런(bankrun·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금자보호제도는 2001년 5000만원으로 정해진 뒤 현재까지 23년 동안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국민 소득 수준 향상과 자산 보호를 위해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01년 1만1563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지난해 3만4658달러로 약 세 배 늘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금융자산 규모가 1경이 넘었다”면서 “우리 경제 규모가 커졌고 화폐 단위도 높아졌기 때문에 예금자보호한도를 확대해도 괜찮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예금자보호한도가 확대되면 그만큼 금융사들이 예보에 지불해야 하는 예보료도 커질 수 있어 그 비용이 소비자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은행들이 예금보험을 믿고 확보한 자금으로 무리한 대출을 집행하다 손실이 발행할 수 있다는 도덕적 해이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5000만원은 너무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조정할 필요는 있지만, 예금자보호한도를 너무 급격히 과도하게 올리게 되면 예금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중요한 점은 위기 상황에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 관련 논의가 활발히 진행될지 주목된다. 최근 예금금리를 올려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하고 있는 저축은행업권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업권 관계자는 “예금자보호한도를 감안해 5000만원 이하로 예금하는 고객이 훨씬 많은 상황”이라면서 “꾸준한 유동성·건전성 관리로 사실상 부도가 날 위험이 없지만 한도를 이유로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예금자보호한도가 더 올라가면 그에 맞춰 더 많이 예금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예금이 많이 들어오면 저축은행도 그만큼 대출을 더 많이 낼 수 있고, 수익성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