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날 때부터 악인은 없다. 드라마 속 악인에게도 저마다 이유가 있다. 언론사의 입장에선 ‘최대 광고주’인 재벌, 게다가 정치권력과 맞잡은 대기업에 기생한 ‘기레기’(기자+쓰레기의 인터넷 조어)도 처음부터 ‘기레기’는 아니었다.
8일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 17회분에선 드라마 속 독보적인 기레기 진경의 한 마디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절정으로 치달았던 이 장면으로 ‘피노키오’는 수도권 15.2%, 전국 12.9%(닐슨코리아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한다’는 가상의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수습기자이자 하나뿐인 딸 최인하(박신혜)와 MSG 방송사의 송차옥(진경) 사회부장의 대화다.
“정의로운 조직은 없다. 나도 14년 전에 내부 고발을 하려 했지만 못했다. 그 선택이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면 된다. 그들이 원하는 하나쯤은 떠들어주고 아흔 아홉 가지의 목소리를 내는 기자가 될 건지 세상에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무력한 사람이 될 건지.”
14년 전 폐기물 처리공장 화재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거대기업과 그에 결탁한 정치인의 비리를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기호상 소방관을 ‘여론몰이’의 희생자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송차옥 부장이었다. 대기업 회장의 회유로 ‘팩트보다 임팩트’를 강조하는 무서운 오보를 낸 기자에게 최인하는 말한다. 엄마이자 부장이고, 한 때는 자신의 꿈이었던 언론인을 향한 수습기자의 당돌한 한 마디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받아쓰는 사람이었나요. 부장은 진짜…기자 맞아요?”
그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내부고발자’라는 주홍글씨를 쓰지 않기 위한 선택이 언론인으로의 소신을 거스르고 사는 길이었다. 그러면서 송차옥은 딸에게 말한다. “무력한 사람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엄마로서 하는 말이다. 내부 고발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가까이서 봤다”고. 인하의 아빠 최달평 역시 내부고발자로 은행을 퇴직하게 됐다.
‘내부고발자’가 현실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조직에서 불법과 비리를 비판하고 공개하면 금세 ‘배신자’가 돼 ‘공공의 적’으로 내몰린다. 그릇된 일을 바로잡는 일은 박수받을 일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생존전략은 조직, 조직 내 권력, 특히 자본의 이동에 따른 권력에 순응하며 침묵하는 것임을 천하의 ‘기레기’의 입으로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직업의식은 투철하지만 직업윤리는 바닥인 캐릭터”이자 “우리 현실의 세태를 극대화한 인물”이라고 자신이 연기하는 송차옥을 설명한 진경은 “직업적인 머리만 발달한 인물이다 보니 자신의 입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참회를 불러왔다. 송차옥 부장은 자신의 맨얼굴을 저격한 새파랗게 어린 최인하와 기호상 소방관의 아들이자 경쟁사 YGN의 수습기자 기하명(이종석)을 만난 뒤 “짜증날 정도로 사람 쪽팔리게 한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만일 제가 시청자의 입장이라면, 팩트 자체의 본질이 훼손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송차옥 기자의 MSC 방송사보단 경쟁사인 YGN 방송사의 뉴스를 봤을 것”이라는 배우 진경이다. 진경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선 “JTBC 뉴스를 즐겨본다”고 했다. “손석희 앵커의 팬이라고” 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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