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경남 사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여교사 텀블러에 체액을 넣는 사건이 발생해, 사제간 법정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다만, 이 사건은 성범죄로는 처벌하지 못하고 '재물손괴죄'로 검토될 전망이다. 왜 그럴까.
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체액 테러’ 사건은 지난해 9월 사천의 한 고교에서 발생했다.
계약직 여교사 A씨는 당시 남학생 40명이 머무는 기숙사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중 화장실에 가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B군이 A씨가 두고 간 텀블러에 자신의 정액을 넣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지난 20일 피해 사실을 국민신문고에 올렸고, 최근 B군을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애초 마음 한구석에 교사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가해 학생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고소나 퇴학 등 처분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며 “다만 학교와 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원했지만, 가해자와 그 부모에게 직접적인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더욱이 학교 측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올까 소극적인 태도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현재 A씨 주거지인 경기도 인근 경찰서에 접수된 상태다. A씨는 지난 2월 말 해당 학교와 계약이 종료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로 처리될 전망이다.
현행 성폭력 처벌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불법촬영 관련 조항을 제외하면 비신체적(비접촉) 성범죄를 형사 처벌할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관련 법 규정이 없다 보니 주로 타인의 물건을 손상시킨 혐의(재물손괴죄)로 다뤄진다. 이에 ‘체액 테러’는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여성동료 텀블러에 수차례 자신의 정액을 넣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에게 법원이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가해자에게 ‘강제추행’ 등 성범죄 조항이 아닌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했다.
한편, 현재 사람이 아닌 물건에 가해지는 ‘체액 테러’도 형사처벌이 가능한 성범죄에 해당하도록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21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조속한 개정안 처리를 촉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