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3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4

“브라보 골프! 원더풀 골프!”

화면 속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680S’의 지붕에 납작 엎드린 채 유호성은 분명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방송 카메라는 곧 허공을 향해 날아가게 될 골프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유민 회장의 눈에는 웬 여자의 가랑이 밑에서 실눈을 뜬 채 엎드려 골프공을 받치고 있는 유호성의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유호성은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그는 주둥이가 가느다란 병을 두 손으로 신성하게 받쳐 들고 있었다. 물론 그 병의 주둥이에는 앙증맞은 골프공이 사뿐히 올라앉아 있었다. 아! 여러 명의 임원들과 함께 보고 있는데… 이걸 어쩌나.

‘휘익~ 딱!’

화면 속에서 웬 여자의 미끈한 다리가 약간 움찔하는가 싶더니 드라이버 헤드가 번개처럼 유호성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골프공이 쨍!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가고, 잠시 후엔 바람에 쓸려 휘날리는 그의 머리카락이 느린 화면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유민 회장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본인이 원한 대로 아들 유호성은 랠리를 포기하고 골프선수로 전향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통쾌하게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꼴이 뭐란 말인가? 하필이면 비키니를 입은 여자 골프선수 가랑이 밑으로 들어가서 ‘인간 티’노릇이나 하는 꼴을 어찌 두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이건 땅을 치고 울어야만 할 일이었다.

“테레비 꺼!”

유민 회장이 손바닥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텔레비전 앞에 몰려든 임원들은 아예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회장님, 텔레비전을 끄다니요? 곧 랠리카들이 몰려올 예정입니다. 누가 선두로 달려올지… 아니, 그것보다도 과연 북한에서 발표한 대로 순순히 국경을 통과시킬지 온 국민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염병!”

이런 걸 울며 겨자 먹기라고 하나? 유민 회장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임원들의 심정도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평상시 유민 회장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고소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한가히 즐길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과연 북한이 국경을 활짝 열고 랠리팀을 받아들일까? 받아들인다면 임원노릇을 당분간 유지할 수 있을 테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랠리 팀을 막아선다면 조만간 실업자로 전락할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끄라고?

“회장님, 저길 보세요… 저 분은…”

골프공을 좇아 허공을 비쳐주던 중계화면이 언제 바뀌었는지…, 텔레비전의 고화질 화면에는 현장의 수많은 인파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클로즈업 되면서 웃고, 즐거워하며 환호성 치는 표정이 한 명씩 화면에 담기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 일이냐, 신희영, 강준호, 유한솜, 권도일의 모습이 순서대로 드러나고 있질 않은가.

“저, 저, 저건…”

“사모님, 공주님, 강 프로… 그런데 공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우리를 몇 년째 골탕 먹이고 있는 권일주가 분명합니다, 회장님.”

“저것들이 어째서 저기에 가 있는 거지? 어쩌자고 맨 앞줄에 서서 텔레비전에 찍히고 난리야? 염병을 떠네, 정말. 이거 전 세계로 중계되는 거지?”

유민 회장은 어느 새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그러나 회장이고 자시고… 임원들은 저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들이대고 환호성을 치기에 바빴다. ‘우와!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늘 찾은 셈이네.’, ‘한솜이… 아니 공주님이 엄청 화면을 잘 받네요.’ ‘권일주 저 양반 아직도 살아있네?’ 등등, 어쩌고 저쩌고…

순간 화면이 바뀌고… 드디어 저 멀리에서 굉음을 울리며 랠리카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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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