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는 우리에게 ‘금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몇 차례 위기를 겪었음에도 왜 ‘동양사태’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금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제대로 인지 못한 탓일 것이다.

금융이란 ‘자금의 융통’의 준말이다. 전통적인 금융은 ‘돈의 여유가 있는 곳’에서 ‘돈이 부족한 곳’으로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이었다. 이런 금융의 의미가 바뀌었다. ‘자금의 융통’에 ‘리스크 관리’가 추가된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의 신규투자나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사업 등을 위해 자금을 모으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나 다양한 자금조달 기법이 개발되면서 자금부족 현상은 많이 해소됐다. 반면 경제가 개방화·자유화되면서 주가, 환율, 부동산가격 등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위험은 매우 커졌다. 이런 리스크 관리가 금융의 주요 업무로 추가된 것이다.

종전까지 ‘리스크 관리’라면 보험을 떠올렸다. 그런데 보험에는 한계가 있다. 화재나 자동차 보험의 경우, 사고 난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수많은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갹출해 사고 발생 자에게 보험금을 몰아줌으로써 위험부담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재난은 다르다. 예컨대 환율 폭등이나, 주가나 지가의 폭락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이런 위험에 대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해졌다.

주가폭락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본 버클리 대학의 헤인 리랜드 교수는 1976년, 교통사고에 대비한 상해보험과 같은 주식투자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곧 풋옵션을 떠올렸다. 풋옵션은 주식가치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미리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어서 주가가 폭락하더라도 일정가격을 보장 받을 수 있다.

풋옵션은 일종의 보험이다. 이것으로 주가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지만 문제는 옵션가격을 얼마로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옵션가격을 계산할 수 있다면 리스크의 가격 산출이 가능해진다. 또 리스크의 가격이 매겨진다면 이를 사고파는 시장도 만들 수 있다.

한편, 1973년 시카고 대학의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는 옵션가격결정 모형을 만들었다. 1960년대 이미 미국의 장외시장에서는 대형 상장주식의 옵션이 거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가격은 어림짐작으로 책정됐기 때문에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어려웠다. 이들은 현재 주가, 가격변동성, 기간, 금리 등의 데이터를 활용해 주식옵션의 이론가격을 도출했다. 이론가격의 산출에 따라 리스크의 가격 매김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결과, ‘리스크 관리’의 큰 장이 열렸다. ‘파생금융’이라 불리는 시장이 바로 이것이다. 은행, 증권사들은 개인이나 기업의 자산 중 리스크를 떼어내 거래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컨대 주식이나 채권을 사면서 동시에 헷지할 파생상품을 구입한다. 풋옵션 같은 파생상품을 통해 언제든지 리스크를 상쇄할 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종전의 ‘자금 융통’이라는 금융의 패러다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97년 숄즈가 옵션가격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래, 올해 노벨경제학상도 결국 리스크 관리와 연관된 자산가치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리스크 관리 금융은 이미 세계적 관심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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