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신이 나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좋아요. 하지만 그 당시 알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믿기지 않죠. 이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상상해 보시라. 20세기 음악의 신화이고,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인 비틀스와 10년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을. 50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비틀스의 멤버 둘(존 레논, 조지 해리슨)을 떠나보냈고, 전성기 시절의 영광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하나씩 생의 마지막을 맞게 했지만, 그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아프게 지켜봤던 사람이 아직 여기에 있다. 비틀스의 개인비서이자 마지막 공식 팬클럽의 회장인 프레다 켈리(68). 어느덧 일흔을 바라보는 프레다 켈리는 EBS국제다큐영화제((EIDF)에 출품된 ‘프레다,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틀스(Good Ol’ Freda·2013)’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프레다 켈리의 현재는 ‘평범한 황혼’이다. 여전히 그녀의 직업은 비서(법률사무소), 누구나와 같은 보통의 삶이지만 영국 리버풀에서 보낸 10대 시절은 조금 특별했다.

프레다 켈리가 비틀스를 처음 만난 건 1961년 리버풀의 유명한 클럽 케번(Cavern Club)이었다. 비틀스가 초기에 수많은 공연을 하고 ‘소녀팬’과 이야기를 나눴던 그 곳의 단골손님이 바로 켈리였다.

“리버풀엔 300여개의 밴드가 있었는데, 비틀스는 이미 유명한 사람들이었어요. 나 역시 비틀스의 팬이었죠. 비서로 지원을 한 적도 없었는데, 나를 뽑아준 브라이언 엡스타인(비틀스 매니저)에게 감사했고, 너무나 영광이었죠.”

그 때부터 11년의 시간 동안 켈리는 비틀스와 함께 했다. 동료를 넘어 친구였고, 가족이었던 켈리는 오랜 친구 비틀스를 추억하며, 웃기고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과장하고 싶지 않아 꺼내놓지 않았던 이야기가 손자를 위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뒤늦게 흘러나온 것이다.

“17세 소녀가 봤을 때 폴은 가장 잘 생겼고, 조지는 사려 깊었어요. 존은 그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주변에 누가 있건 없건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사람이었죠. 링고는 늘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사무실에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냈으니 결혼 전 존 레논과 링고스타의 비밀연애는 물론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켈리의 기억 안엔 선명했다. 그 시절 켈리는 소녀의 마음으로 비틀스 멤버들을 바꿔가며 연정을 품기도 했지만 마지막엔 늘 친구, “그저 함께 성장한 소년, 소녀였다”는 것이 켈리의 추억이다.

하지만 끝은 있었다. 켈리가 비틀스를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던 무렵은 비틀스 멤버간의 불화설이 쏟아지던 때다.

“마지막 2년은 어려움이 많았어요. 비틀스라는 그룹을 위해 일했지만, 결국 하나의 그룹을 유지하지 못했죠. 일을 끝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조지 해리슨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하는 것이 아니냐”며 만류했지만, 시간은 결국 흘렀다. 그 시절을 함께 한 켈리를 링고스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프레다는 우리에게 최고의 친구이고 좋은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프레다를 사랑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