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페낭이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말레이시아 전기전자 산업의 중심이기도 하여 다수의 다국적 반도체 기업 현지 법인이 위치하고 있다. 페낭 섬은 전통적으로 야권성향이 강한데 이는 인종적으로 비말레이계가 전체 인구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는데도 영향이 있지만 발달된 전기전자 산업이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는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순소득 1만50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변혁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그램 내에 전기전자 산업도 국가핵심경제영역으로 지정되어 반도체 등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과제가 추진되고 있다.

경제변혁 프로그램에서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는 반도체 산업 공정 단계별로 제시되어 있다. 반도체 산업을 제조공정에 따라 나누어 보면 설계→제조→패키징 및 테스트의 단계로 구성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설계 단계에서는 기업숫자 확충, 제조 단계에서는 틈새시장 공략을 위한 추종자 전략, 패키징 및 테스트 단계에서는 선도 기술 개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위의 과제에서 짐작할 수 있는 점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치사슬의 뒤로 갈수록 말레이시아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이 반도체 산업 가치 사슬상의 뒷부분에 특화되어 발전해 온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은 기술력과 대형 설비투자가 필요한 설계 및 제조는 주로 선진국이나 반도체 산업이 발달한 지역에 설치하는 반면 후공정은 적정 기술수준을 보유하면서 노동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에 설립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지역이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이며 특히 말레이시아에는 인텔, 페어차일드, 온 세미콘덕터, 인피니온, 르네사스 등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기업의 후공정 시설이 다수 설치되어 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이 거대 다국적 반도체 기업의 국제통합생산 사슬의 일부분을 담당한 것과 우리나라가 종합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발전시킨 것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 기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한국 기업이 2개 포함되어 있으나 말레이시아 기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몇몇 말레이시아 기업들은 다국적 기업의 후공정을 담당하면서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자국 패키징 및 테스트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유니셈, 카르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반도체 산업 선진화를 위해 노력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어도 후공정에 특화된 산업구조가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설계 단계의 실력이 확충되고 제조단계가 설비투자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선 대부분의 다국적 반도체 기업들이 패키징 및 테스트 부문은 아웃소싱을 하거나 해외에 공장을 설립해도 반도체 설계 분야는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제조단계 역시 확충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자국 팹기업은 실테라 정도며며, 말레이시아에 팹을 설치한 다국적 기업도 인피니온, 온세미컨덕터, 엑스-팹 세미컨덕터 파운더리즈 등에 불과하다.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은 자국기업 보다는 다국적 기업의 현지 법인이, 설계 및 제도 보다는 후공정이 중심이 되어 발달해 있다. 정부 정책도 선진기술 개발은 후공정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말레이시아 반도체 사업 진출에 관심이 있는 우리 기업들은 후공정 분야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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