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만세’를 불렀고, 작은 영화가 대작을 이겼다. 광복절다운 휴일 극장가였다.
손현주 주연의 스릴러 영화 ‘숨바꼭질’(감독 허정)이 광복절을 맞은 지난 15일 극장가에서 일일 흥행순위 1위를 기록했다. ‘숨바꼭질’은 지난 14일 개봉해 첫 날은 ‘감기’(감독 김성수)에 근소한 차로 밀렸지만, 하루만에 순위를 역전시키며 정상에 올랐다. 새로 개봉한 ‘숨바꼭질’과 ‘감기’에 밀려 승승장구하던 ‘설국열차’(감독 봉준호)와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는 3~4위로 내려앉으며 가속도는 주춤했지만, 앞선 영화들과 큰 차이없이 흥행질주를 계속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4편이 한꺼번에 관객몰이를 한 덕에 한국영화는 역대 최고 수준의 흥행기세를 보여줬다. 이대로라면 8월 국내 극장시장의 매출과 관객수는 월별 기록으로 사상 최고점를 찍을 전망이다.
‘숨바꼭질’의 선전은 ‘작은 영화’의 반란이라는 점에서 특히 돋보였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25억원으로 ‘감기’(100억원)와 ‘설국열차’(430억원), ‘더 테러 라이브’(35억원)에 한참 뒤쳐진다. 같은날 개봉한 ‘감기’의 4분의 1수준, 사상 최고 수준 제작비가 투입된 ‘설국열차’와는 무려 20분의 1 수준이다. 다른 작품들이 이미 스크린에서 흥행파워가 검증된 국내외 톱스타를 내세운 반면, ‘숨바꼭질’은 주로 TV드라마에서 활약하며 팬들로부터 연기력에서 큰 신뢰를 얻고 있는 손현주와 전미선, 문정희 등이 출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선전은 놀라웠다. 참신한 소재와 잘 짜인 구성, 긴장감 넘치는 전개 등 작품성에 대한 호평이 흥행으로 이어졌다.
‘숨바꼭질’은 서울의 최고급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살던 남자가, 평생 의절하고 지내다시피했던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추적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우리 사회에서 부와 신분의 상징이 돼버린 ‘집’을 향한 현대인들의 탐욕을 빼어난 상상력과 이야기로 보여줬다. 첫 이틀간 누적관객은 77만명을 기록했다.
치사율 100%의 변종 인플루엔자가 덮쳐 우리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는 가상의 상황을 그린 재난 영화 ‘감기’도 무서운 기세로 스타트를 끊었다. 개봉 전 유료 시사까지 포함한 누적관객은 88만명. 순위경쟁보다도 1000만명 돌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설국열차’는 개봉 보름여가 지난 15일까지 누적관객 748만명을 기록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누적관객 454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은 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의 위상(봉준호), 중견 감독의 건재(김성수), 신인감독의 약진(김병우, 허정)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 지구적 이슈와 한국사회의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 정치ㆍ사회적 비판을 담은 주제의식, 영상기술의 비약적 발전 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에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폭염에 지친 관객들을 상영관으로 불러들이며 흥행순위 1~4위를 싹쓸이한 한국영화 덕에 여름 성수기 전체 극장 시장 규모도 커졌다.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전체 극장관객수는 165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416만명에 비해 14.5%나 증가했다. ‘도둑들’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이 흥행에 성공한 지난해 8월 한달간 매출 및 관객수는 월별 기록에서 사상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어, 1년만에 경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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