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 감추어진 승부 (37)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이탈리아계 미국인 음악가 ‘척 멘지오니’의 불루겔 혼 소리는 새벽하늘을 처절하게 찢으며 공중으로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쾌한 행진곡 풍이던 그 소리는 언제부터인지 뜨거운 눈물이 되어 가슴 속을 적시고 있었다.

“저게 ‘산체스네 아이들’ 이란 곡예요. 처음엔 신나다가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슬퍼. 그런데 어째서 랠리 출정 때마다 저걸 틀어주나 몰라요.”

현성애가 엉덩이를 연신 긁적이며 말했다. 몸에 꼭 끼는 드라이빙 슈트를 입고 3점식 안전벨트를 조여 맨 상태라서 엉덩이를 긁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오늘 안에 어떤 놈 하나는 죽어 자빠질 것이란 암시겠지. 그나저나 모기에게 200방은 물린 것 같아. 이걸 어쩌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1974년 산 치타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선을 벗어나서 불과 100미터 앞에 리본 모양의 첫 번째 코너가 있었으므로 유호성은 과격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죽였다. 그러자 꽁무니로 터져나가는 불꽃!

아직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터라 치타의 머플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은 찬연했다. 이른바 ‘애프터 파이어 (after fire)’… 질주하던 경주차가 코너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 스로틀 밸브가 닫히면서 상당히 진한 혼합가스가 만들어지는데, 이 혼합가스가 불완전 연소로 이어지면서 머플러 끝으로 불꽃이 터져 나오게 되는 현상이다.

“정신 차려요. 클리핑 포인트가 너무 안쪽으로 쏠렸어. 출발하자마자 머신을 긁어먹을 뻔 했잖아요?”

코-드라이버 현성애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클리핑 포인트란 코너링 할 때에 코너 안쪽으로 타이어가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지점을 말한다. 보통 리본모양의 코너에서는 속도를 저속으로 놓고, 코너 중간보다 끝 쪽에 클리핑 포인트를 설정하는 편이 보다 안전하다. 그런데…

“오빠 믿지? 오빠가 어떤 사람이야?”

유호성은 기고만장할 뿐이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를 통과할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자랑하는 투라고나 할까?

헤어핀을 벗어나자 그는 또다시 전속력으로 내쏘기 시작했다. 시속 100km에서 순식간에 150km, 200km, 230km, 240km… 차창 옆을 타고 흐르는 바람소리가 오히려 교교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영국에서 제작된 ‘아카비온 GTBO’는 최고속도로 시속 547km를 달성한 적이 있다. 그런 가공할만한 속도로 주행하노라면 차창 앞에 비춰지는 모든 사물이 일그러져서 눈앞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시야가 좁아져서 이른바 코브라 현상에 이르기도 하는데, 지금 유호성은 그런 상태를 갈구하는 지도 몰랐다.

“벌써 온 몸이 뜨거워지는 군. 모기한테 물린 곳부터 달아올라.”

엉덩이? 모기에게 잔뜩 물려 빈대떡처럼 부풀어 오른 엉덩이가 뜨거운 모양이었다. 유호성은 ‘쿨 슈트’로 통하는 아이스박스의 펌프를 가동시켰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얼음 좀 아껴 써요.”

“또 잔소리!”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경주 차에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따라서 조끼와 헬멧 안에 쓰는 속 모자를 아이스박스와 호스로 연결하여 찬물을 순환시키곤 하는데… 얼음의 양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아껴 써야 하는 것은 철칙이다.

1974년 산 치타의 운전석에서는 이토록 철 없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유호성과 현성애는 아직 상대를 견제하거나 대응할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멀리서 보노라면, 시속 240km로 내쏘는 1974년 산 치타의 뒤로 두 대의 머신이 맹렬히 따라붙고 있었다.

자욱한 먼지에 가려 형체가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N-Dos의 ‘블랙 이글스’였다. 그럼 나머지 한 대는? 황금빛 광채가 번쩍이는 것으로 보아 권도일의 ‘로열 골드’가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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