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과거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시민 혁명에 쫓겨난데 이어 무르시 대통령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저항을 받은 끝에 집권 1년만에 축출당한 셈이다. 그러나 군부의 무력개입에 따른 국론분열로 이슬람 세력과 세속ㆍ자유주의 진영 간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르시, 군부 쿠데타로 1년만에 축출=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3일 오후 9시께(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군부는 조기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집트 국민과 군부의 퇴진 압박에도 사임을 거부해온 무르시는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약 1년만에 대통령직을 잃게 됐다.
엘 시시 장관은 이어 현행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재판소 소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집트군은 이날 무르시와 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일부 지도부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했다고 A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무르시 대통령이 1년만에 실각한 것은 이집트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 세력인 군부가 또 정치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 정치권과 거리를 둔 군부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나흘 만인 3일 정치 일선에 나서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
이집트 역사에서 군부는 지난 60년간 핵심 권력을 거머쥔 실세 역할을 해 왔다.
1952년 가말 압둘 나세르가 이끄는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로 파루크 왕조를 무너뜨린 이후 무르시를 제외한 모든 대통령은 이집트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이집트에서 군은 국민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1948년과 1973년 사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4차례의 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현재 군 복무자나 군 경험자가 없는 이집트 가족은 거의 없다.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재임 당시인 1973년에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격파했을 만큼 ‘강군(强軍)’으로 인식되는 등 국민의 자랑 가운데 하나였다.
45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군은 이집트 사회에서 가장 청렴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 계층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군부는 오랜 기간 신성불가침한 자치 영역으로 인정됐다.
군 예산은 의회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군의 활동영 역도 호텔이나 가전제품, 생수, 자동차 제조, 주유소 사업 등 상업적인 부문에까지 미치고 있다.
군부는 정국 혼란에서도 노련한 정치력을 보여줬다.
군부는 이집트 안보와 안정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로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그러한 책임에 수반하는 정치적 명예를 중요시했다.
▶무르시, 파라오 꿈꾸다 몰락=이집트 군부에 3일 전격 축출당한 무함마드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은 최대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이집트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 대표를 맡고 있다가 대권에 도전한 무르시는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인사인 아흐메드 샤피크와 치열한 경쟁 끝에 대권을 차지했다.
2011년 시민혁명 전까지 무슬림형제단 주요 간부로서 왕성한 정치적 활동을 벌인 무르시는 보수 이슬람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르시는 1975년 카이로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공학도 출신으로 198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USC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중반 사상적으로 무슬림형제단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해 9년 뒤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무슬림형제단 정치국 위원으로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다 1995년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개혁주의 판사들을 지지한 혐의로 그다음 해 구속돼 7개월간 복역한 전력도 있다.
무슬림형제단을 대표해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2010년에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함께 ‘변화를 위한 국민연대’ 활동을 전개했다.
2011년 1월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3일 뒤 전국적 규모로 확대된 ‘금요 시위’ 당일 무슬림형제단 간부들과 함께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혁명 기간 무슬림형제단 간부와 투옥 중에 교도소를 빠져 나왔는데 이집트법원은 지난달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도움으로 교도소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무르시는 교도소에서 나온 뒤 무슬림형제단 대변인을 거쳐 2011년 4월 이 조직이 창당한 자유정의당 대표를 맡았다.
무슬림형제단은 애초 카이라트 알 샤테르 부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나 테러 지원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후보 자격이 박탈되자 무르시를 대체후보로 서둘러 내보냈다.
무르시는 비록 뒤늦게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이집트 최대 조직의 후원 아래 서민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다.
유세 과정에서 ‘이슬람이 해결책(Islam is the Solution)’을 선거 구호로 채택해 이슬람주의자 이미지를 굳혔다.
이러한 보수적 종교 이미지로 ‘종교ㆍ여성 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는 취임 당시 “대통령에 당선되면 기독교인과 여성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자유·세속주의 세력으로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과도 정부를 이끄는 군부와 갈등을 겪은 데 이어 사법부와도 권력 암투를 벌이면서 무르시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외교정책과 관련해 무르시는 이스라엘과 1979년에 맺은 평화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 기반을 확대하고 아랍권에서 이집트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무슬림형제단과 세속ㆍ자유주의간 국론분열 불가피=이집트 군부가 전면에 나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에 성공했더라도 국론 분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집트의 국론 분열은 애초 무르시가 야권과 타협 없이 새 헌법 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무르시는 지난해 11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사법부의 의회 해산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현대판 파라오 헌법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제헌의회의 합법성 여부를 최종적으로결정하는 재판을 열기 며칠 전에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무르시는 ’파라오 헌법 선언‘으로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제동을 걸었고, 이집트 사법부는 93년만에 전면 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법 파동이 벌어졌다.
무르시는 더 나아가 제헌 의회가 신속하게 표결로 승인한 새 헌법 초안을 강행 처리해 야권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당시 표결은 제헌 의회 의원 100명 중 기독교계와 자유주의 진영 의원들이 불참하고, 무슬림형제단 회원과 살라피스트 등 이슬람주의자 위주로 86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 헌법 초안은 야권의 참여 없이 무슬림형제단과 살라피스트들이 주도적으로 작성해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무르시는 이후에도 새 헌법 제정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야권과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
이집트 자유주의 세력은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에 맞서고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정치적 독점화를 막고자 세속주의ㆍ사회주의ㆍ민족주의 성향의 인사, 여성단체들과 합류했다.
자유ㆍ사회주의 계열 등을 모두 어우르는 범야권 그룹인 ’구국전선(NSF)은 ”무르시는 정당성을 잃었다“며 퇴진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범야권 그룹은 반정부 시위 조직 ‘타마로드’(반란)를 만들어 ‘불신임 서명’ 운동을 전개해 2천20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냈다.
이집트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자유ㆍ세속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지지자들로 양분된 적이 있다.
자유ㆍ세속주의자와 소수 기독교인은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이자 무바라크 정권 당시 외무장관을 역임한 아므르 무사와 총리 출신인 아흐메드 샤피크를 지지했다.
반면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로 내세운 무르시는 이슬람교도 서민층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서 무르시는 51.73%를 득표해 48.27%를 얻은 샤피크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선 투표 수치에서도 이집트 국민은 양분된 여론을 여실히 보여줬다.
test100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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