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5회> 바람에 맞서는 법(54)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지난번 북한에서 국제 골프대회를 개최했을 때 공교롭게도 유호성 선수가 캐디 자격으로 참가했습니다. 강유리 선수의 캐디로 말입니다.”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강유리 선수는 한때 타이거 우즈가 수제자로 받아들인 적도 있으니 북한 대회 참가에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강유리 선수의 골프 캐디로 참가해서 북한을 방문했던 유호성 씨가 이번에는 거성그룹의 랠리 드라이버로 변신했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릴까요?”
특별보좌관은 예리하게 재벌2세를 쏘아보며 물었다. 뭔가 숨기고 있는 사항이 있다면 이실직고하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유호성 선수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재벌 2세는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물고는 코끝으로 그 향을 맡으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가 담배까지 꺼내든 것은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예고였으니… 이실직고하라는 암시에 대한 답변이었다.
“특보님은 알고 계십니까? 유호성 선수의 가족사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제련그룹 회장 유민이고요, 어머니가 HY 훌 푸드 회장 신희영입니다. 두 분은 서로 이혼한 상태인데…”
“물론 알고 있습니다. 유민제련과 HY 훌 푸드의 광고싸움이 전 국민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습니다만…”
“유민 회장은 유호성을 랠리 선수로 키우려 하고, HY 훌 푸드 신희영 회장은 골프선수로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줏대 없는 유호성이 탁구공처럼 오락가락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 거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호성의 랠리 실력을 높이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단지 그뿐이라고요? 그렇다면… 애초에 유민 회장이 랠리 대회를 기획할 때, 거성에서 투자약속을 했다가 중도에 의도적으로 포기한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유민 회장이 자금난에 쪼들리도록 유도한 게 아닐까요?”
“그건… 아무래도…”
“M&A, 피도 눈물도 없는 인수합병의 전초전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성그룹이라고 해서 기업사냥꾼이 되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하지만… 대선주자로 나선 우리 대표께서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아직까지는 요.”
“아직까지 라고요?”
“거성그룹과 한 배를 탈 수 있게 된다면 간과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보님.”
“도와주십시오. 이번 랠리 대회에는 여러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북한의 정권다툼에도 영향이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당 서열 33위 도형철을 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형철의 특명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된 예원희를 관찰하는 것이로군요? 우리 거성에서는 어떤 수순을 밟아야 합니까?”
재벌2세는 순간적으로 대선주자와 한 배를 타야 하리라고 판단했다. 물론 선거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은 좌단, 혹은 우단의 어느 한 쪽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그는 특보의 손을 굳게 움켜쥐는 것으로서 합류의 뜻을 전달했다.
“예원희는 도종호 상무를 통해서 북한에 골프산업을 부흥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들을 적극 밀어주십시오. 유호성 선수는 우리가 계속 주시하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대선주자가 에어 뮬 개발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까? 재벌2세는 문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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