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2회> 바람에 맞서는 법(41)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차가 맑으니 찻잔에 달이 비치는 군요.”
달 밝은 밤에 어느 선사가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했다던가? 그러자 이미 차를 다 마셔버린 다른 선사가 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차가 없으니 달도 비치지 않습니다 그려.”
언뜻 들으면 어린아이들 장난처럼 여겨지는 이 말은 사실 익히 알려진 선문답 중의 하나이다. 찻잔의 달은 원래부터 없던 것. 차를 비우듯이 마음을 비우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어쩌자고 마음속에 욕심을 가득 채우고, 그 욕심으로 인해 투영되는 허상에 일희일비 하는가.
“커요? 작아요?”
“딱 맞아요.”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허허벌판, 아프리카 군인들에게 위협 당한지 불과 몇 분도 흐르지 않은 순간, 무엇보다도 저 멀리서 또 한 무리의 머신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이 긴박한 순간에 강유리와 현성애는 찻잔을 놓고 마주앉은 선사들처럼 선문답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눈 선문답은 인간의 실체를 규명하는 선사들의 문답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브래지어 사이즈는 C컵인데 그게 너에게 맞는다고?’ 하는 원초적인 물음이었으며, ‘그래, 맞는다. 사실은 좀 작지만 도움을 받는 상황이라서 맞는다고 대답했다. 어쩔래?’ 하는 질투 성 선문답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끼어있는 유호성을 놓고 호기롭게 굿판을 벌려보고자 하는 그녀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아마 이런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야, 강유리! 감히 내 랠리 파트너 앞에서 젖가슴을 드러내고 설쳐? 내 브래지어라도 벗어줄 테니 냉큼 가리지 못해?’
‘어라? 저것이 나를 핑계로 내 남자 코앞에서 윗도리를 홀랑 벗어? 호성오빠를 진하게 유혹해 보자는 거야? 뭐야.’
자고로 여자들의 질투엔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날린다고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1974년 산 치타의 열린 창문 틈으로 강유리와 현성애는 강렬한 눈빛을 교환할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읽은 그녀들은 결코 순순히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다.
“고맙지만… 이거, 필요 없어요.”
강유리는 얼떨결에 제 알몸 위에 걸쳐 입기 시작했던 현성애의 연두 빛 브래지어를 냉큼 벗어서 치타의 열린 창문 틈으로 던져 넣었다.
“아니, 여기가 아마존인줄 알아요? 어서 입으세요.”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현성애는 창문 틈으로 그 연두 빛 브래지어를 다시 집어던졌는데… 그러기를 서너 차례. 저물어가는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연두 빛 브래지어는 이리저리 허공을 훨훨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자는… 다름 아닌 N-Dos 단의 졸병이었다. 자비심으로 가득한 소령에게 자살폭탄마저 빼앗기고 맨손으로 쫓겨난 그는 겨우 스물다섯 살을 갓 넘긴 애송이였다. 하지만 명색이 남자 아닌가. 남자라는 관점으로만 본다면 스물다섯 살 나이가 결코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메이 아이 헬프 유?”
그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영어회화를 구사하며 주섬주섬 강유리에게 뭔가를 들이밀었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알몸으로 서있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딱해 보였을까? 그가 내민 것은 땀에 밴 자신의 군복 윗도리였다. 군복을 벗어든 그 병사의 상반신은 어느새 알몸이었다.
“아니, 저 놈마저 옷을 벗고 설쳐?”
두 여자의 알몸시위에 가뜩이나 넋이 빠져있던 유호성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러졌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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