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被抄於內人, 入宮中, 頗有容色).”

숙종실록(肅宗實錄) 12년(1686년) 12월 10일 4번째 기사 ‘장 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다(命封張氏爲淑媛)’에 실린 장희빈(禧嬪張氏ㆍ1659~1701)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조선 최고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於于同ㆍ?~1480)을 기록한 성종실록(成宗實錄)은 그의 외모와 나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황진이(黃眞伊ㆍ?~?)는 실록에 한 줄 기록조차 없다. 그만큼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이 여성의 외모에 대해 언급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장희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사관들도 그 미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드라마와 영화 속 장희빈은 모두 당대 최고 미녀 배우들의 차지였다.

다음달 8일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이 첫 전파를 탄다. ‘장옥정’은 장희빈을 다룬 아홉 번째 작품이다. 아홉 번째 장희빈은 대한민국 미녀 배우의 대명사 김태희가 낙점됐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김태희 이전에 대중을 사로잡았던 8명의 장희빈을 연기한 배우들은 누구일까?

첫 번째 장희빈은 60년대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였다. 김지미는 1961년 정창화 감독의 영화 ‘장희빈’에 출연해 희대의 악녀 연기를 선보였다. 장희빈하면 떠오르는 표독스러운 악녀 이미지는 김지미로부터 시작됐다. 두 번째 장희빈은 문희, 윤정희와 더불어 ‘60년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인 남정임이다. 남정임은 1968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요화 장희빈’에 출연해 세련된 장희빈의 모습을 보여줘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김태희(탤런트/영화배우)
숙종실록(肅宗實錄) 12년(1686년) 12월 10일 4번째 기사 ‘장 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다(命封張氏爲淑媛)’에 실린 장희빈(禧嬪張氏ㆍ1659~1701)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김태희(탤런트/영화배우) 숙종실록(肅宗實錄) 12년(1686년) 12월 10일 4번째 기사 ‘장 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다(命封張氏爲淑媛)’에 실린 장희빈(禧嬪張氏ㆍ1659~1701)의 외모에 대한 묘사다.

윤여정은 세 번째 장희빈이자 텔레비전 드라마 최초의 장희빈이다. 윤여정은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을 통해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윤여정은 사람들로부터 돌멩이를 맞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윤여정은 사약을 받은 최초의 장희빈이기도하다. 숙종실록은 27년(1701년) 10월 10일 2번째 기사에서 “예조로 하여금 자진(自盡)한 장희빈의 상장의 제수를 참작하여 거행하라고 하교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 죽음의 과정에 대한 묘사는 없다. 장희빈하면 떠오르는 ‘사약신’은 연대 미상의 궁중소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사약신’이 시청자들에게 안긴 충격은 대단했고, 이후 모든 장희빈은 역사적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사약을 받아야만 했다.

네 번째 장희빈은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 이미숙이었다. 이미숙은 1981년 MBC ‘여인열전-장희빈’에 출연, 표독스러운 이미지에 섹시함을 더한 새로운 장희빈의 모습을 보여줘 호평을 받았다. 다섯 번째 장희빈 전인화는 1988년 MBC ‘조선왕조 500년-인현왕후’에서 요부의 이미지에 갇혀있었던 장희빈에 우아한 매력을 덧입혀 인기를 끌었다.

90년대로 접어들자 장희빈 연기도 진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장희빈을 연기한 정선경은 진화의 시작이었다. 1995년 SBS는 창사 최초로 선보이는 사극 ‘장희빈’에 톱 여배우 대신 신인인 정선경을 캐스팅하는 모험을 벌였다. 그러나 정선경은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고, 드라마는 줄곧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며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SBS는 ‘홍길동’, ‘임꺽정’, ‘대망’, ‘여인천하’ 등 굵직굵직한 사극을 차례로 내놓는다.

대한민국 대표 섹시 스타 김혜수는 출연을 확정한 영화까지 제쳐두고 일곱 번째 장희빈 자리를 선택했다. 2002년 KBS 2TV ‘장희빈’에 캐스팅된 김혜수는 “평생을 연기해 보고 싶었던 캐릭터”라고 강한 의욕을 드러내며 열연을 펼쳐 미스 캐스팅 논란을 씻었다. 이 작품으로 김혜수는 장희빈을 진취적인 여성으로 재해석하며 연기대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2010년 MBC ‘동이’에서 여덟 번째 장희빈으로 낙점된 이소연은 품위 있고 지혜로운 장희빈을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아홉 번째 장희빈 김태희는 장희빈을 사랑에 목숨 건 순수한 여인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다. 김태희는 지난 11일 경기 고양 탄현 SBS제작센터에서 가진 드라마 ‘장옥정’ 기자간담회에서 “순수함과 야성미를 지닌 새로운 장옥정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과연 김태희가 기존 장희빈의 영광을 이어 받아 드라마의 흥행을 이끌고 연기파 배우로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