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의 다른 이름‘ 유행어’로 본 시대상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머감각’은 시대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스펙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20ㆍ30대 남녀 직장인 10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기 직원 유형 1위는 ‘유머감각이 있는 직원’인 것으로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이 좋아하는 유머는 ‘유행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된다. “고뤠?”는 지난해 전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 중 하나다. ‘고뤠?’ 열풍에 대해 개그맨 김준현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고뤠?’에는 직장인들의 애환이 배어 있어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 하면서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했을 때 화를 내기보다는 ‘그래?’ 하고 인정하면 약간의 통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던 유머와 유행어를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모든 종류의 유행어는 시대상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그 한마디로 공감 코드를 형성할 수 있고 동시대인으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밥 먹고 합시다” “잘될 턱이 있나”…‘사회 풍자’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유행어=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머란 사회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조선 후기 양반사회가 몰락하고 있을 무렵 우리 선조들은 ‘탈춤’의 해학과 풍자를 이용해 양반사회를 조롱했다.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내뱉는 대사는 당시 대중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했던 셈이다.

사회 비판 의식이 내포된 시사풍자 유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무렵 대세를 이뤘다. 당시 ‘유머 일번지’라는 개그 프로그램은 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며 ‘잘될 턱이 있나’ ‘딸랑딸랑’ ‘밥 먹고 합시다’ ‘잘돼야 할 텐데’ 같은 유행어를 남겼다. 특히 ‘유머 일번지’ 코너 중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상들을 언어로 풍자하고 민주화 요구가 거셌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지난 2011년 애정남(애매한 걸 정해주는 남자)로 유명세를 탔던 개그맨 최효종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를 하고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된다. 공약을 이야기할 때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역을 개통하면 된다. 현실이 어려우면 말로만 하면 된다”고 정치 풍자를 했다가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강용석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풍자 개그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며 개그맨들이 유행어를 통해 내뱉는 촌철살인이 대중 ‘해우소(解憂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머학’ 관련 책을 집필한 유동운 부경대 교수는 “유머에는 전달력이 있다. 유머에 의존하게 되면 심각한 내용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은 그 메시지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랬구나~” “극뽁!”…사회를 ‘힐링’하는 유행어=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유머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위한 오락의 일종이자 의사소통의 한 형태’를 의미한다. 유머의 핵심은 결국 ‘웃음’이고, 이는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막간의 안식처가 된다.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무한도전이 낳은 유행어 중 하나는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다. 이는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든 우선 공감을 해주는 소통방식이다. 사람들은 이 유행어를 따라 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과거 개그맨 최양락, 김학래 콤비가 탄생시킨 유행어 중 “괜찮아유~”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하고 ‘낙관’하는 태도에서 웃음을 유발시킨다. 이 밖에도 최근 인기를 모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는 “극뽁”이라는 유행어에도 긍정의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한때 연기자 최불암 씨가 유행시킨 “파~”라는 너털웃음은 전 국민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선사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유머, 유행어는 사람들을 동화시키는 힘이 있다”면서 “유머 한마디로 심각한 상황이 부드러워질 수도 있고, 긍정적인 유행어를 통해 대중들이 웃으며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웃음’을 동반한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다.

바쁜 일상을 소화하는 현대인들에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이는 어느 사회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이 대학생 250명을 대상으로 ‘어떤 성격의 배우자를 원하는지’ 물어본 결과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상위에 꼽힌 것도 같은 차원이다.

▶“부자 되세요~” 욕망을 대신 표현하는 유행어=한때 ‘김기사 운전해~’라는 유행어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사모님이 등장해 김기사를 부르며 각종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개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사모님 놀이’가 전 국민적인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독설 캐릭터로 유명한 방송인들이 거침없이 내뱉은 멘트와, 드라마에서 “뭬야?”라는 연기자의 호통 대사 한마디가 세간의 화제가 된 것도 대중의 심리를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 몇 해 전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멘트 한마디가 새해 인사로 유행을 한 것은 국제 금융위기 등 경기침체로 인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한 유행어다. 또 외모지상주의를 극대화시킨 “이~뻐”라는 유행어 속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이고 본능적인 면모가 내포돼 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유행어는 대중 정서를 반영하기도 한다. 독설 유행어가 인기를 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울분이 많이 쌓였고 그것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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