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사진 김명섭 기자] 지난 5일 오후 4시40분, 올시즌 첫 대상경주가 열린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도핑(Doping)테스트를 마친 13두의 출주마들이 서서히 출발선에 들어섰다. ‘내장산’(13번마) 등 우승후보 3두와 글로벌퓨전(9번마) 등 다크호스 3두가 대결하는 신년초 최고의 ‘과천 더비(Derby)‘에 2만5000여 구름 관중의 시선이 집중된다.
출발신호가 울리자, 12두가 순조롭게 출마(出馬)했지만, 우승후보 2순위였던 12번마는 컨디션 난조로 뒤늦게 출발해 끝내 꼴지를 면치 못했다. 다크호스로 꼽히던 ‘돌풍질주’는 커리어(Career)를 따라 3분의2 지점까지 선두로 순항했다. 우승후보는 역시 직전주로에서 강했다. 4코너를 돌아 추입을 시작한 ‘내장산’은 손쉽게 선두를 빼앗았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결승점을 불과 70미터 앞둔 지점 맹렬한 기세로 아웃코스를 질주하던 ‘글로벌퓨전’이 역전에 성공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다. 엎치락 뒤치락 접전속에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 우승마는 없었고, 1,2위 예상 하마평(下馬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일반의 예상을 깬 결과이기에, 대회를 공동주관한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과 이영만 ㈜헤럴드(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 주니어헤럴드) 대표는 “시즌초 최고의 더비”라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퓨전’과 조경호 기수 모두 지난해 부상에 시달려 예상평 1,2위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날 대상경주 우승마에겐 단식 베팅으론 꽤 높은 4.1배가 배당됐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헤럴드경제 경마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질주, 추입의 역동성, 기수의 몸놀림과 예술적인 말 근육의 울림, 그리고 기막힌 역전...경마의 짜릿함에 영하의 날씨가 잦아드는 듯 하다.
경마의 매력은 다른 면에서도 발견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 중 상당수가 경마에서 유래된 점은 이 레포츠에 동서고금의 남녀노소가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방증한다. 빅게임을 뜻하는 ‘Derby’, 경력과 행로를 의미하는 ‘Career’, 금지약물 ‘Dope’와 복용 투약 여부를 검증하는 ‘Doping test’, 시종 선두를 달려 우승한다는 뜻의 ‘Wire-to-wire’, 3개 대회 석권의 의미인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등이 모두 경마에서 유래됐다.
강용식 서울마주협회장의 저서에 따르면, ‘Career’는 원래 말의 빠른 걸음 또는 마차를 뜻하는 프랑스어(carrière)로, 유럽에서 경주로, 경주장을 이렇게 불렀으며, ‘Derby’는 1780년 영국 왕실과 귀족이 총 출동해 관람하던 최고 경마대회, 현대경마의 기원이 되는 이 대회 창시자 이름이다.
또 ‘Wire-to-wire’는 중세 경마 우승마 식별용으로 끈을 이용하던 때, 출발지점의 와이어를 가장 먼저 끊은 말이 결승점의 와이어 까지 첫번째 끊었을 때 쓰던 경마 용어이다.
1900년 사전에 등재된 경주마 능력향상 약물 ‘Dope’는 아프리카 줄루족 전사들의 출정 직전 마신 알콜성 음료 ‘Dop’에서 유래됐는데, 금지약물검사(Doping test)는 1911년 오스트리아 경마대회에서 처음 시행됐고, 일반스포츠에서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1928년,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가 1968년 공식 도입했다.
‘박근혜 출마(出馬), 문재인 낙마(落馬)’라는 예문에 쓰인 출마, 낙마라는 단어 역시 경마에서 유래됐다. ‘Give and Take’(협상)라는 숙어도 수백년전, 경마에서 이길 명마를 구하려는 영국 마주와 생산자 간 흥정과정에서 처음 생겼다고 한다.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가야 할 지점인 하마비(下馬碑) 주변에 모여 앉아, 마주(벼슬아치 양반)들의 출세, 낙오, 진급, 인사 등 거취를 예상하던 마부들의 촌평’에서 유래된 하마평은 경마장을 달구는 핵심 요소이다. 과천의 1,2,3위 예상평은 실제 경기에서의 질주와 추입 못지 않게 뜨겁다.
기마민족인 우리 민족 역시 말과의 인연이 깊었다. 고구려는 ‘기마궁술(騎馬弓術 : 말 타고 활 쏘기)’은 아시아 최고였으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말을 타고 필드하키를 벌이는 격구(擊毬)가 크게 성행했다. 기차,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19세기 말에는 근대적 경마가 국내에 상륙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말과 인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집에서 키우기엔 너무 크고 비싸니, 시민과 함께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 경마공원과 종마목장이 있으니, 말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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