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별난 라면사랑

1960년대 처음으로 등장한 라면 끓는 물에 5분이면 뚝딱 ‘맛의 신세계’ 결혼식 손님 접대 위해 내놓기도

최근엔 특별한 장소에서도 즐겨 겨울 한라산서 컵라면 먹기 유행

특급호텔 룸서비스 라면은 2만원대 가격에도 야식메뉴 1위

“딸 결혼식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라면을 대접했다.”

1967년 6월 3일자 모 일간지에 실린 칼럼 내용의 일부다. 당시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의 가격은 10원. 짜장면이 30원이던 시절이니 비싼 음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맛의 첫인상은 강렬한 법. 낯선 것은 귀하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끓는 물에 5분이면 뚝딱 만들어지는 라면의 새로운 맛은 물 조절을 못한 멀건 국물이어도 신세계였다. 계란과 김치를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어 귀한 손님을 위한 접대 요리 취급을 받았다. 딸 결혼식에 국수 대신 내놓아도 크게 욕먹을 음식은 아니었던 셈.

가난과 배고픔의 시절이었던 1963년 출생해 압축적 경제성장의 동반자로 변신을 거듭해온 라면.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에서 웰빙식품까지 진화를 거듭하며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꿔놓았다. 분식점, 자취방, 만화방, 당구장, 편의점, 비행기, 호텔방, 산정상 등, 화장실 빼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라면을 만난다. 한국인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도 2008년 우주선에서 라면을 먹었다.

그토록 한국인이 사랑하는 라면이 더욱 맛있어지는 장소를 꼽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주식량’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더 이상 1960년대처럼 귀한 음식이 아닌 라면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야 더욱 애틋하다. 대표적인 게 비행기와 산이다. 하늘을 날며 맛보는 ‘기내식 라면’은 특별한 경험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모두 기내식으로 라면을 서비스한다.

▶눈 내린 한라산…컵라면 없으면 재미없지=최근 한라산 등정객들 사이에선 컵라면을 먹는 게 유행이다. 어딘지 겹쳐지는 영상이 있다. 한국인들이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 오르면 4~5배의 돈을 내고 반드시 신라면을 먹고 온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는 박지연(26ㆍ여) 씨는 “얼마전 친구들과 눈 내린 한라산에 올랐는데, 컵라면을 먹기 위해 모두 개인 보온병을 필수로 챙겼다”며 “추운 데서 먹는 라면은 어딘지 더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라면을 즐기기 위해 보온병을 챙기는 등산객들이 많다.

박 씨는 “겨울 등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얀 눈밭 위 컵라면이 놓여진 ‘인증샷’을 찍는다”며 “맛있는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성능 좋은 보온병 등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물의 온도에 따라 자칫 퍼석퍼석한 ‘과자’를 먹을 수도 있다.

한라산 백록담 아래(해발 1900m)에는 대규모 라면 수송을 책임지는 ‘한라산 라면 열차’가 지난다. 등반객들을 위해 라면을 가득 실은 열차는 모노레일을 따라 진달래밭(해발 1500m)과 윗세오름(해발 1900m)을 향해 매일 출발한다.

▶호텔 룸서비스도 인기…배달은 ‘1분30초’안에=만 미터를 오르는 비행기, 1950m의 한라산 외에도 사람들이 라면을 ‘몰래’ 즐기는 곳이 있다. 바로 특급호텔. 비행기 기내식처럼 호텔에서 라면을 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식 메뉴로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숙박객의 요구에 따라 맞춤 라면을 제공하는 곳이 더 많기 때문.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해물라면을 룸서비스를 통해 먹을 수 있다. 세금과 봉사료를 포함해 2만6000원. 시중 라면에 비하면 비싸지만, 출시 8년이 넘도록 야식메뉴 1위를 지키고 있다.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주로 내국인 손님들이 주문하는데, 면발은 취향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며 “야식ㆍ해장용으로 밤 시간에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최고의 요리사가 모여있는 특급 호텔도 라면 조리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 강남의 한 특급호텔에서는 룸서비스로 제공한 라면이 탱탱 불어버린 사건(?)으로 아예 서비스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불거나 식지 않도록 운반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며 “이동하는 동안 뚝배기에서 조리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1분30초가 최적의 배달 시간이다”고 덧붙였다.

파크하얏트에서도 요청이 들어오면 ‘당장 준비되는’ 재료들을 추려 ‘즉석 라면’을 대령한다. 주로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담긴 라면이 인기라고. 공식 메뉴는 아니지만 1만7600원(세금, 봉사료 포함)으로 가격을 정해놨다. 일본인 관광객이 80% 이상인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메뉴에 없는 요청은 거의 없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 라면 가게 등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인근 편의점을 안내해 준다고. 다음날 객실에는 어김없이 깨끗한 컵라면 봉지가 남아있다.

박동미ㆍ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