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장 꿈꾸던 태권소년, 대졸의 벽 넘어 세상에 돌려차기하다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눈을 의심했다. 언뜻봐도 영락없는 그였다. 설 연휴 전날(2월 8일) 늦은 오후.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 자리잡은 떡볶이ㆍ튀김 판매대에 들어서 있던 그는 입맛 다시며 주인에게 이것 저것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달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인물의 이채롭다면 이채로운 설맞이 풍경이다.
일부러 아는 체하지 않았다. 칼바람이 살을 애는 추위 탓이 컸다. 명절 인사도 안 한 변명 하나 더 들자면 20여일 전 공식 인터뷰에서 그가 나지막이 들려줬던 단어(굶주림, 소박, 재래시장 등)가 거짓이 아니었음을 비공식적인 노상(路上)에서 몰래 확인한 기쁨을 이 지면에서만 풀어놓을 욕심이 있었다.
장인수(56) 오비맥주 사장. ‘고졸 신화’ ‘영업의 달인’이라는 세간의 수식어가 붙은 그가 내달려온 과거, 현재는 현란하지 않았다. 진한 사람 냄새 풍기는 음성을 타고 그의 삶 속으로 지금 출발한다.
■‘인증샷 찍히는 사장님’…외국계 대주주엔 ‘돌직구’ 인터뷰를 했다는 증거로는 사진 만한 게 없지만, 그는 “(사진) 찍힐 때마다 부자연스러워 죽을 맛”이라며 주저했다.
맥주 회사인 만큼 생맥주를 따르는 모습을 연출하기로 했다. 매달 한 번씩 본사 직원이 생맥주를 곁들이며‘칭찬의 밤’행사를 갖는다는 호프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망설이던 그는 카메라 플래시가 몇 번 터지니 결심한 듯했다. 위ㆍ아래 중후한 갈색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윗옷을 입고 맥주를 따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왕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라며 상의를 벗어 제꼈다. 촬영 중간중간에도 오비맥주를 알리는 PR영업을 쉬지 않았다.
“제가 사장이 된(지난해 6월) 뒤엔 형식적인 행사를 모두 없앴어요. 틀을 깨니까 우리 직원 중에 끼있는 인재가 많다는 게 드러나더군요. 저더러 ‘영업의 달인’이라고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요. 후배들 중에 저 정도 할 사람 많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그들의 끼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촬영을 끝내고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사장 자리에 오른 비결 등을 본격적으로 듣겠다 싶었는데 그는 복도 한 켠에 멈춰섰다.“이게 우리가 경쟁사를 제치고 15년만에 정상탈환(시장점유율 1위)한 걸 기념하기 위한 동판입니다. 그래프 보이죠. 이 밑에 빽빽한 글자는 1600여명 모든 직원의 이름입니다.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죠."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사장을 맡은지 6개월. 그는 오비맥주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했다. 취임 직후부터 작년 말까지 3개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직원 750명을 빠짐없이 만나본 뒤 내린 결론이다. “제가 영업만 30년 넘게 해서 생산을 몰랐습니다. 막연히 생산직원들은 강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애사심이 영업직원보다 강했어요.”
그는 진정성을 얘기했다. 생산직원 대상 간담회만 30회, 회당 3~4시간씩 걸린 것도 진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안되는 건 안된다고 하고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줘야 하는 겁니다. 다 풀어놓고 얘기하는 게 소통이잖아요. 1회에 20~30명씩 모아놓고 술 한잔씩만 받아 마신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버겁습니다. 그러나 다 끝내고 나니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됩디다.” 직원들과 몸으로 부딪히고 함께 숨쉬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그는 “현장에서 사진 참 많이 찍혔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며 인증샷이 잘 나오개 하는 비결을 알려줬다.
“휴대폰으로 여러 번 촬영을 하다보니까 같이 찍는 사람보다 머리를 살짝 뒤에 놓으면 얼굴이 엄청나게 작게 나오더라구요. 사진에 나온 얼굴 크기로 현장 직원들 분위기가 좋아지고 그렇게 해서 또 한 번 웃는거죠.”
신세대가 셀카를 찍을 때 경쟁적으로 얼굴이 작게 나오려고 자리다툼을 하는 걸 체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언론사 제공용 사진촬영엔 ‘초짜’더니 회사 식구 휴대폰에 담길 사진엔‘선수’였던 셈이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임직원에 이처럼 ‘부드러운 사장’이지만, 대주주(외국계 펀드 KKR)엔 까탈스럽다.
“오비맥주가 제게(1980년~2009년까지 진로 임원, 하이트주조ㆍ주정 대표이사까지 지냄) 스카웃 제의를 했기에 주주들 만난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요. ‘먹튀’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요. 외국계 펀드니까 회사 주가 오르면 팔고 나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업계에 파다했고, 저로서도 오비에 몸담으면 정확한 팩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니 자세하게 말해주더군요. 저도 웃기는 놈이죠.”
‘샐러리맨 사장’인 그의 사측을 향한 ‘돌직구’는 이뿐 아니었다. 영어쓰지 않기. 주주대상 경영 상황 브리핑 않기.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기 등 3개 조건을 들어주면 오비맥주에서 일하겠다고 했다. 배포가 여간 크지 않고선 내걸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오비맥주는 이를 다 수용했고, 현재도 지키고 있다.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능력에 자신이 있었던 겁니까”라고. 그는 긴 웃음 끝에 “그런 것 없으면 되나”라고 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성적이 좋지 않아 상고 진학…“부친에겐 최대의 불효였다” 고교시절 성적이 궁금했다. 공부는 잘했으나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던 시절을 지나온 연령대여서다. 그는 가식이 없었다. 회사원이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TV와 전축이 있었다고 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사정도 아니였단 얘기다.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 상고를 갔죠. 태권도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는데 중학교 시절 운동에 심취하다보니 학업에 흥미를 잃었어요. 상고에도 대학 가려는 학생을 위한 ‘진학반’과 취업하려는 ‘취업반’이 있는데 저는‘취업반’을 선택했어요. 반에서 10~20등 사이였으니 성적이 아주 바닥은 아니었죠.”
본인 의지에 따라 결정한 진로였지만 부모의 반대는 심했다.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3남 1녀 중 장남인 장 사장이 꼭 대학에 들어가길 바랐다. 장 사장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서 유독 낮게 깔렸다. “대학엔 못 간 걸 후회하지 않지만, 아버지 뜻대로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불효라는 걸 깨달았어요. 당신 친구분들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해 반듯한 회사에 취직했다는 얘길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을까를 생각하게 된거죠.”
장 사장은 그러나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 이런 불효의 반(半)은 훗날 자신의 노력으로 메운 것 같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탓에 1998년 다들 명예퇴직으로 회사에서‘아웃’될 때 저는 이듬해 2월 부장으로 진급했어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셨죠. 같은 해 12월엔 임원까지 됐는데, 아버지는 5월에 세상을 뜨셨고…, 임원 승진하는 걸 보셨으면 대학 못 간 물효를 완전히 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요즘도 힘들 때면 강원도 횡성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찾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온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2030 청년에게 고함…“이룰 수 있는 꿈부터 꿔라”
묵직한 대화 소재를 던졌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청년층은 ‘5060’기성세대보다 훨씬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불평하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지금 젊은 세대들아요? 차를 살 능력도 없으면서 빚을 내서 구입을 합니다. 우리 세대는 집이 먼저였어요. 못 먹고 못 입으면서도 저축을 한 건 집 장만을 위해서였죠. 젊은이들은 포기가 쉬운 것 같아요. 집을 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풀기 쉬운 문제인 차 구입부터 하려는 인상이 짙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쉬지 않았다.“저 고액연봉자 맞습니다. 그런데 제 삶이 호화스러운줄 아세요? 아닙니다. 아직도 노후를 걱정해요. 자식한테 부담주지 않기 위해서요. 검은 비닐봉지 들고 재래시장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고르는 건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겁니다. 기성 세대들이 모든 걸 다 갖고 출발했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그는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게 특히 좋다고 했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란다. 그 곳에 갈 때는 자가용을 놔두고 지하철과 버스를 탄다. 이런 말을 주변에 하면 믿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장 사장은 경험에서 우려난 진심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학창시절 이렇다 할 꿈을 갖고 살지 않았다고 했다. 거창한 그림을 그리는 대신 현실에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살다보니 현재의 자신이 돼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태권도 도복을 여매는 띠 아시죠? 흰띠 다음엔 노란띠, 그 후엔 파란띠를 따게 되는데 우리 때는 그 띠를 버리지 않고 다 덧댔어요.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씩 밟아 제가 6단까지 땄습니다. 삶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이룰 수 있는 꿈을 꾸고 그게 성취됐을 때 또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생각하는 것이죠. 꿈을 꾸되 자신에게 맞는 걸 찾는 게 중요해요.”
여기서 태권도와 관련된 장 사장의 ‘비화(秘話)’ 하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88년, 딱 1년간 태권도장 관장을 하면서 대박(?)을 친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 다니던 회사(진로)에서 한직 발령을 받아 이른바 ‘투잡’을 했던 것.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도장 운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관원은 50명에 불과했지만 1년 뒤 130명으로 불어났다. 관장으로서 수입도 짭짤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5배나 많았다고 했다. 이쯤되면 타고난 영업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대박 비결에 대해“아이들에게 많이 베풀었다”며 “은퇴 뒤에도 관장을 할까 생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장인수 오비맥주사장.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130118
■성공하는 샐러리맨?…“문제제기에서 끝나선 안돼” 학력의 한계를 딛고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됐으니 출세의 비결 하나 쯤은 갖고 있으리라.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둔 ‘로비의 기술’따위의 수준이 아니었다. 장 사장은 바람직한 샐러리맨상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제가 전 회사에서 차석이었을 때부터 지켜온 원칙이 있습니다. 부하직원들이 부장에게 갖는 불만이 많았어요. 저는 그걸 기억했습니다. 제가 부장 자리에 올라가서는 절대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실천했죠.”
상사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시쳇말로 ‘들이받은’적도 없다고 했다. “윗사람에게 할 말은 다했습니다. 조직 생활하면서 직언을 많이 한 편이죠. 제가 살아남은 비결은 옳지 않은 지시엔 반드시 잘못됐다고 지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데도 강행하겠냐’고 상사에게 물었는데도 지시를 철회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예상되는 문제점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도 그것까지 해결해버렸습니다. 이게 상사들한테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도 나쁜 평가를 받지 않는 요인인 것 같아요.”
장 사장 본인이 이렇게 살아온 만큼 일 잘하는 직원에 대한 기준도 명확했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점만 얘기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죠. 잘하는 사람은 문제점을 얘견하고 해결책까지 내놓습니다.”
그는 이같은 직장 생활 노하우를 스스로 깨우쳤다고 했다. 태생이 몰입을 잘하는 성격이어서 문제가 불거질 듯하면 철처히 준비하고 대비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것. “일이 틀어졌을 땐 화를 잘 내는 편이예요. 밑바닥부터 일을 배운 덕분인지 세밀한 부분까지 지시를 내리죠, 그래도 큰 문제가 생기면 질책보단 수습이 먼저합니다.”
이제껏 마냥 ‘부드러운 사장’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근면함을 30년 넘는 세월 동안 체득하고 실천했고, 스스로 후배들에게 샐러리맨 신화의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한 장 사장에게 잊지 못할‘결정적인 순간’은 뭘까. 그는 진로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IMF 이후 회사가 부도, 법정관리, 인수합병(M&A) 되면서 선배, 동료들이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날 때 가슴이 무척 아팠어요. 2003년 스승의 날엔 입사 1년여된 후배들이 ‘우리 일해야 하니까 이끌어달라’고 말하며 울먹일 때 함께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에게 결정적 순간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직을 한 건 잘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대표이사가 돼서가 아니예요. 저의 능력도 만개하는 것같고 회사 직원들도 끼를 발산해 1등하는 맛도 알게 된 것 같아 그렇습니다. 제가 이 회사를 맡고 있는 한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직원은 단 한명도 없도록 할 겁니다.”
글=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장인수 사장이 걸어온 길> -1955년 전남 순천 출생
-1973년 대경상업고등학교 졸업(최종학력)
-1976 삼풍제지주식회사 경리부 입사
-1980년 ㈜ 진로 입사, 영업 담당
-1999년 ㈜ 진로 영업이사
-2007년 ㈜ 진로 서울권역총괄 상무이사
-2008~2009년 하이트주조/주정 대표이사
-2010년 1월 오비맥주 영업총괄 부사장
-2012년 6월~현재 오비맥주 대표이사 사장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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